육아일기(생후 9개월)
2003.12.2.
00 이는 요즘 혼자 잡고 일어서서 논다. 한 손으로 잡고 일어날 수 있고 1-2초 정도 혼자 설 수 있다. 걸음마 연습은 시키지 않은데도 혼자 잡고 걷는 연습을 한다. 손 사용은 무척 세밀해져서 바닥에 떨어진 아주 작은 것도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잡아 올려 입으로 가져간다. 청소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달에 00 이와 함께 여행을 가려하는데 어디를 가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00 이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장소 결정이 쉽지 않다.
00 이는 요즘 ‘엄마’, ‘아빠’, ‘찌찌’, ‘안돼’등등의 단어를 가끔 말한다. 혼자서 짝짜꿍, 잼잼을 하고 머리와 허리를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한다. 00 이의 재롱을 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어제 정기점검을 받으러 소아과에 갔었다. 건강하고 명랑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키와 체중이 표준인데 다른 아기들은 대부분 더 크니까 이유식을 먹고 싶어 하는 만큼 주라고 하신다. 00이 먹이는 것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2003.12.11.
이제 2003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는 00 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다. 건강하고 이쁜 아기를 주셔서 하느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00 이는 매일 많은 사랑을 표현한다. 얼굴을 내 몸에 기대거나 비빌 때 너무 이쁘다. 언젠가는 나에게만 향했던 이 사랑을 거두어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모습이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거의 대부분을 서서 놀기 때문에 밤에 잠도 잘 잔다. 요즘은 혼자서 5초 정도 서서 균형을 잡다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혼자서 서고 걸을 것 같다. 매일매일 무럭무럭 자라는 00이가 무척 사랑스럽다. 이제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어서 00 이와 함께 외출하는 것이 무척 망설여진다.
젊은 시절 나는 자존감이 낮은 편이었다. 물론 그 당시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나의 이 말을 의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들 눈에 나는 항상 당당하게 그리고 계획한 일을 반드시 해내는 '의지의 한국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그래서 쉴 새 없이 공부하고 일하면서 존재의 가치를 느끼려고 했던 자존감이 낮은 편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주는 무한한 사랑은 내가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아이는 마치 나를 내가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대했다. 나만 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는 아이로 인해 나는 정말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게 됐다.
00아. 고맙다. 이제 돌아보니 엄마는 너로 인해 참 많이 성장해구나. 언젠가 네가 안타까워하면서 말했지. "엄마가 나를 낳지 않았다면 박사도 되고, 직장생활도 계속했을 텐데..."라고 말이야. 엄마는 그때도 너보다 그것들이 소중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그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을 거야. 그 맘은 지금도 변함없단다. 네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야. 그냥 너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