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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나기 시작했어요

육아일기(생후 10개월)

by 친절한 상담쌤

2003.12.15.


00 이가 부쩍 큰 느낌이다. 한자리에서 죽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운다. 하루 세끼 식사에, 몇 번의 간식을 챙기는데 분주할 정도이다. 매일 다양하게 먹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옹알이도 굉장히 다채로워졌다. ‘엄마’‘아빠’라는 말뿐 아니라 여러 가지 말들을 하면서 논다. 책장에서 책을 뽑고 책장을 넘기거나 찢고, 장난감도 통에서 꺼내어 논다. 특히 잡고 일어서서 오랜 시간 논다. 잠깐 동안 아무것도 잡지 않고 서서 균형을 잡는다. 잡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능숙해졌다. 그런데 유모차를 타지 않으려고 해서 외출하는 것이 좀 더 어려워졌다.


슬링은 이제 사용하기 어려워져서 아기띠를 사서 업고 다니고 싶다. 그런데 어떤 띠를 사용해야 할지 결정이 쉽지 않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걸어 다니고, 한 두 마디 이야기를 할 날이 올 것 같다. 따스한 봄날에 아장아장 걷는 00 이와 이쁜 꽃들이 있는 공원에서 사진 찍는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

2003.12.27.


올 한 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내 인생의 전환점이다. 한 아이로 인해 참으로 행복하고 한편으로 많은 책임감이 느껴진다. 여태까지 산 30년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듯이 앞으로의 30년도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을 충분히 느끼고 싶다.


며칠 동안 감기에 걸려 호되게 앓았다. 무엇보다 00 이에게 감기를 옮길까 봐서 너무 걱정이 되었는데 00 이가 건강하게 지내줘서 너무 고마웠다. 몸이 아프니 내가 힘든 것보다 00 이와 더 놀아주지 못하고, 먹거리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너무 속이 상했다. 엄마는 정말 건강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더욱 건강관리를 위해 노력할 거다.


그리고 비상시를 위해 00이의 이유식을 3가지 정도 만들어서 냉동시켜 놓아야겠다. 다양한 식단의 이유식을 잘 먹고 소화시키는 00 이가 너무 기특하다. 요즘에는 밤에도 잘 자는 편이고 먹는 약 때문에 젖을 먹지 못해도 잘 적응해서 너무 기쁘다. 이제 내년에는 놀이방에 가야 하는데 놀이방 가서 잘 먹고 잘 놀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00 이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00이 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아직 몸이 완전하게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남은 며칠 동안 새해계획을 세워야겠다. 내년에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그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싶다.

2003.12.30.

어젯밤에 남편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00 이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00 이에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이드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좀 더 구체적으로 00 이가 어릴 때는 즐겁게 놀아주는 아빠, 그리고 조금 더 크면 다정한 아빠, 그리고 그 후에는 편한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힘들겠지만 지금의 다짐을 자꾸 되새기면서 진짜 그런 부모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관도 재정립되는 것 같다. 여태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고 그렇게 했지만 이제는 부자가 되고 싶다. 앞으로는 부자 아니 부자 엄마가 되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다.


2004.1.3.


새해맞이 프로젝트로 도배를 했다. 도배지가 부족해서 한 면 반밖에 도배를 못했지만 너무 의미 있는 일이었다.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맞이한 첫 새해이기도 하다. 00 이와 함께 맞이하는 새 해! 그래서 더더욱 내게 소중하다. 올 한 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

2004.1.5.


00 이의 이가 드디어 나오고 있다. 가려운지 침도 조금 흘리고 칭얼거리기도 하지만 너무 사랑스럽다. 이제 조심스럽게 밥을 주기 시작했는데 너무 잘 먹고 소화도 잘 시킨다. 이제 죽에서 벗어나서 밥, 국, 그리고 반찬으로 이유식을 하려 한다. 너무 잘 먹고 소화를 잘 시키는 것이 너무 대견하다. 이제는 치즈도 한자리에서 한 장을 다 먹는다. 잘 먹는 만큼 몸무게도 쑥쑥 늘어주었으면 좋겠다.


00 이는 이가 늦게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가 날 때 더 반가웠던 것 같다. 아이가 손가락 빠는 것을 방치했다가 초등학생 때 부정교합으로 교정치료를 받았고, 아이 이 빼는 시기가 늦어 덧니가 생겨 고등학생 때부터 또 교정치료를 받았다. 힘든 교정과정을 다 마치고 얼마 전에야 교정기를 뺐다. 이가 났을 때 엄청 기뻤던 글을 읽으니 이로 인해서 고생한 기억이 줄줄이 생각난다. 그래도 교정치료를 받고 00 이가 만족해서 다행이다.


00 이를 키우면서 제일 미안했던 것은 내가 너무 많이 아팠던 거다. 아파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날들이 참으로 잊혀지지 않는다. 좀 더 건강한 엄마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부자 엄마는 되지 못했다. 부자가 되려고 공부를 해보았는데 내 적성에 안 맞았다. 그냥 절약하는 것이 내 취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잘하는 것이라도 열심히 하자 하고 살았다. 요즘 00 이와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 대화를 하다가 농담 삼아 "이 정도로 만족하면 안 되는데 엄마가 너무 만족을 한다"는 말을 한다. 그래도 어쩌나. 나는 그냥 지금 이 정도로 만족스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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