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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ug 14. 2023

[에세이] 굳은살이 생겨야 기타를 잘 칠 수 있다

시작은 고통이나 끝은 창대하리라

 얼마 전부터 유튜브를 보며 기타를 배우고 있다. 아직 칠 수 있는 코드는 A, E, D 코드뿐인데, 심지어 D 코드는 능숙하지도 않다. 그래도 뜨문뜨문 <연가>는 칠 수 있다. 최소 하루에 10분은 <연가>를 치며 노래 부른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귀에 걸리곤 한다. 즐겁다는 기분이 이런 기분인가 싶다.


 군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말년 병장 시절 항상 생각했다. 전역하면 운동 하나와 악기 하나는 무조건 하겠다고. 전역 직후, 운동으로는 입대 전 조금 했었던 수영을 다시 배웠지만, 악기는 전역한 지 1년이 가까워진 지금에야 잡았다. 그래도 그때의 열정만큼은 식지 않은 것 같다. 내 결심보다는 조금 늦게 배움을 시작했지만, 꾸준히 기타를 잡는 내 모습이 조금은 대견하다. 그렇게 여겨주기로 했다.


 ‘원하는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것’이 얼마 만인가 문뜩 생각해 봤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쉽게 요구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여전히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기를 어려워했다. 한편,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전에 걱정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최근까지도 그런 편이었기에, 무언가를 시작할 때 항상 주춤거렸다. 부모님은 대기만성형(大器晩成形) 인간이라며 나를 위로해 주셨으나, 나는 성공하지 못해 버림받는 그릇이 될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 위의 것들은 모두 내 요구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들을 수용받지 못할 것만 같은(즉, 혼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원하는 것일수록, 중요한 것일수록 더디게 도전했었다. 혹은 도전하지 않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용기를 내고 싶었다. 거절당해도,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원했었던 기타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기타를 칠 때는 코드를 짚은 손가락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기타 줄은 예상보다 단단했고, 손끝은 생각보다 여렸다. 하루 종일 손이 욱신거렸던 것 같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이 아린 통증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굳은살도 나름 박혀서 이전만큼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중학생 때부터 기타를 쳤던 엄마는 이 정도 굳은살로는 아직 어림도 없다고 했다.


 엄마는 기타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기타를 잘 치고 싶어서 굳은살이 빨리 생기면 좋겠다는 마음에 아스팔트 길바닥에 손가락 끝을 갈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고민했다. 아, 나도 그렇게 해야 하나? 하지만 그렇게 할 용기는 차마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조금 딱딱해진 손끝이 다시 물러지는 게 아쉬워서 매일 기타 줄을 잡을 뿐이다. 언젠가는 손끝이 더 단단해지겠지. 연주를 더 잘할 수 있겠지.


 굳은살이 두꺼워지면서 코드를 잡는 게 더 수월해지는 것처럼, 작은 것부터 하나씩 도전하다 보면 더 크고 중요한 것에도 도전할 힘이 생기지 않을까? 물론 굳은살이 생기는 과정은 찢어질 듯 아프겠지만, 어쩌면 아스팔트 길바닥처럼 거친 상황과도 마주칠 수도 있겠지만, 그 끝에 도래할 성취는 흥겨운 연주처럼 나를 기쁘게 하리라 의심치 않는다. 두꺼워진 굳은살이 벤 손으로 다양한 코드를 연주하는 나를 기대하며, 그것이 기대에서 끝나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기타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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