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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ug 15. 2023

윤동주, 침전하지 않은 글

<쉽게 씌어진 시>와 작가로서의 삶의 태도

 광복 78주년이라고 한다. 광복절을 그냥 넘기기는 아쉬워서, 내게 감동을 준 시인에 대해 글을 남겨본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윤동주 시인이다. 윤동주의 시 중 가장 좋아하는 시를 꼽기는 ‘부모님 중 누가 더 좋으냐’라는 질문에 답하기만큼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꼽아보자면, ‘서시’와 ‘쉽게 씌어진 시’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고 말하겠다.


그중 ‘쉽게 씌여진 시’에는 윤동주의 고뇌와 슬픔, 그리고 그의 부끄러움이 진하게 새겨져 있다. 더 나아가서는 시인의 저항 의지까지도 읽어낼 수 있는데, 이 글에서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생활환경과 너무도 다른 환경에 처한 조선 청년들을 보며 부끄러워한다. 조선 청년들은 육첩방이 아닌 좁은 방에서 지내며, 보내주신 학비 봉투가 아닌 직접 번 학비로 유학을 이어 나가기 때문이다. 또는 대학 노트가 아닌, 무기를 들고 일제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들을 보며, 시인은 자괴감에 휩싸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국과 동무들은 고생하며 살아가는 와중, 홀로 편하게 ‘남의 나라’에서 공부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나는 왜 침전하고만 있는가.’ 그의 자책과 부끄러움, 그리고 미안함이라는 감정들이 창밖에서 속살거리는 밤비에 섞여 있는 듯하다.


 그렇게 성찰을 마친 시인은 자신의 방식으로 싸우려 한다. 아니, 싸우기 시작한다. 그는 펜을 쥔다. 등불을 밝혀 조금이라도 어둠을 몰아내고, 아침을 기다리는 ‘나’는 그렇게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시인이 맞이한 고뇌의 최후는 시를 통해 일제에 대항하는 ‘나’였다. 그것이 윤동주의 항일 방식, 그 자신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나간다.


 일제 강점기 윤동주의 작품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는 자기 세상에 갇혀 살지 않았다. 그는 시대를 명확히 바라보고, 공감했으며, 부끄러워했고, 저항했다. 그의 글뿐만 아니라, 그의 삶 역시 그것을 반증한다.


나는 그가 살았던 환경보다 더 쾌적한 환경에서 매일 저녁 ‘쉽게 씌어진’ 글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그만큼 침전하는 글은 더 많은 것 같다. 이 시간, 그저 가라앉아 버린 나의 글과 삶을 반성해본다. 또한 윤동주처럼 아침을 기다리며 글을 써야겠다고 감히 다짐해본다. 그리고, 눈물과 위안으로 자신에게 적은 손을 내밀었던 그 젊은 시인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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