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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ug 19. 2023

[에세이] 부산의 달

청춘, 수수께끼, 그리고 처량함.

 며칠 전, 수개월 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였다. 길게는 고1 때부터, 적게는 고3 졸업 이후까지, 그사이 사귀었던 친구들이었다. 대부분은 고2 수학여행 때 친해졌는데, 에어컨을 차갑게 틀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함께 공포영화를 봤었던 그 애송이들은 이제 어엿한 스물넷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병역의 문제도 해결된 때, 부산을 떠나 각기 다른 대학교로 흩어져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행복한 바보들의 모임이었다.


 고등학교 어느 때부터 자주 가던 국밥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친구 놈 중 하나가 반주를 하자고 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소주를 한 병 주문했다. 그리고 우리는 가볍게, 국밥을 먹으며 소주를 두세 잔씩 걸쳤다. 그 뒤 우리는 동전 노래방에 갔다. 에어컨이 싸늘하게 틀어져 있던 것이 마치 수학여행 때의 숙소를 떠올리게 했다. 그날은 애초에 내가 노래방비용을 내고 싶었기에, 거금 오천 원을 투척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는 김건모의 <서울의 달>을 예약했다.


 곧 내가 부르는 차례가 되었다. 처량한 서울의 달을 노래하는 그 늙은 가수의 목소리에 내 목소리를 녹여댔다. 그리고 친구들은 내 목소리에 각자 자신들의 목소리를 덧입혔다. 합창이 시작된 것이다. 어쩌면 소주를 대여섯 병씩 마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그 가사에, 텅 빈 가슴 안고 산다는 그 가사에 취한 것이었다. 고작 이십 대 초중반인 내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이 그렇게 처량한지, 우리는 함께 그것을 불렀다. 나는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훑어보았다. 그들 모두의 삶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나는, 한 영혼 한 영혼의 처량한 그 감성과 바보 같은 웃음 뒤에 숨겨진 처량한 한숨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얼핏 창문 너머로 달이 보였는데, 평소 달 보기를 좋아했던 나지만, 그날따라 그것은 나를 더 서글프게 하는 듯 해 지켜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내 친구들에게 공감해 주는 듯하여 그것을 붙잡고 싶기도 했다. 순간 나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의 주인공, ‘이종우(유아인 役)’가 내뱉은 대사를 떠올렸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한텐 세상이 너무 수수께끼 같거든요.’ 그렇지만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지금을, 수수께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서글픈 합창을 글로 남기자고.


 이후 우리는 흥겨운 댄스 노래들로 소리 지르고, 춤추고, 웃고 떠들며 열여덟 곡을 불렀다. 그것은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쓴맛이 느껴졌던 것은, 그날 바라보았던 저 부산의 달이 너무 처량했던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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