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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ug 23. 2023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오펜하이머와 고흐

 서문.

 며칠 전, 영화 <오펜하이머>와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감상했다. 두 영화는 모두 전기 영화이지만, 전개 방식과 색감, 음향 등의 연출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그 두 영화를 묶어서 글을 쓰는 이유는 두 주인공, 즉 J.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빈센트 반 고흐는 모두 범인(凡人)을 초월한 속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 J. 로버트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고조되는 음향을 통해 오펜하이머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탁월하게 표현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연출은 원폭 투하 후 강당에서 연설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청중이 발을 쿵쿵 굴리는 소리를 통해 그의 고뇌와 두려움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을 그렇게 고뇌했을까? 무엇을 두려워한 것일까? 그는 일본에 투하된 두 번의 원자 폭탄이 제2차 세계대전뿐 아니라, 인류의 모든 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이상과는 달리 그것은 분열의 시작이자 충돌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오펜하이머는 영화 속 아인슈타인과의 대화 중 했던 말처럼, 세상을 파멸로 이끌기 시작했다는 두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그것이 그에게 ‘손에 피가 묻은 느낌’을 주었고, 소련과의 군비 경쟁을 경계하는 발단이 되었다. 그것 때문에 그는 후에 공산주의자로 몰려 수모를 겪었다.

 오펜하이머는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죄로 끝없는 벌을 받아야 하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인류에게 원자 폭탄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갖게 한 죄로 계속해서 고통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 죄는 시대가 그에게 안긴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시대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천재는 시대가 감당해야 할 비극을 홀로 안고 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2. 빈센트 반 고흐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고흐의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주관적 쇼트가 자주 사용된다. 그리고 그 쇼트에서는 대상이 흐리게 보이거나, 색감이 다르게 보이거나, 조금은 왜곡되어 보인다. 그것을 통해 관객은 고흐가 세상을 보는 경험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고흐가 느꼈던 자연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생전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 화가였다. 광인(狂人)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자 했고, 자신의 예술관을 세상으로 내어 보이고자 했다. 무엇이 그 원동력이 되었을까?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애정과 그 애정을 지지해 주는 단 한 사람, 동생 테오의 존재가 힘이 되어준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고독하고 외로웠지만, 계속 그림을 그리며 도전할 수 있었다. 물론, 세상이 그의 작품을 수용한 것은 그의 사후였다. 그렇기에 그의 일생은 비극이라고 말하기 충분하다. 어쩌면, 이미 죽어버린 그를 불후의 명화를 그린 화가로 인정하는 세상은 잔인해 보인다.

 고흐는 그림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세상을 향한 광기를 모두 가졌던 예술가였다. 뒤늦게 그의 애정과 광기를 천재성과 신파로 둔갑시켜 수용하기 시작한 시대는 그를 더욱 비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대의 흐름에 벗어난 천재의 외로움 속 홀로 생명을 깎아 가는 행위는 어찌할 수 없는 순리인지도 모르겠다.


 발문.

 두 천재의 삶은 매우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잘못됐고 이상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그러한 행위들은 범인을 초월한 존재가 세상에 녹아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세상으로부터 얻지 못하는 공허함을 채우려는 행위, 군중 속의 고독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 어쩌면 시대의 흐름을 탔든,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났든, 모든 천재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숙명인 것 같다. 오펜하이머와 고흐, 두 인물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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