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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ug 25. 2023

[에세이] 운전대

아빠를 바라보는 초보 드라이버

 며칠 전 약 6개월 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전역 직후 취득했던 2종 보통 면허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면허를 딴 뒤로부터 시간은 꽤 흘렀지만, 여전히 운전할 때 긴장을 많이 한다. 아직 차폭도 내 눈에 익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오른쪽을 봐주어야 했다. 그런 내 옆에는 아빠가 탔다. 나는 내가 운전을 하는 것보다 아빠가 조수석에 탔다는 것이 더 어색했다.


 우리 가족은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어릴 때부터, 아빠 차를 타고 전국 곳곳으로 여행을 갔었다. 그 자동차는 황금빛 마티즈였다가 하얀색 레조였다가 은빛 산타페가 되었다. 그리고 운전석의 주인은 대체로 아빠였다. 엄마도 운전을 잘하시는 편이었지만, 가족끼리 이동을 할 때는 아빠가 운전석에 앉았다. 어디를 가야 했든, 거리가 가깝든 멀든 아빠는 늘 운전대를 잡았다. 어릴 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다. 운전은 당연히 아빠의 몫, 그렇게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끼리 떠나는 여행의 횟수는 줄고, 자연스레 운전대를 잡은 아빠의 모습도 보기 어려워졌다. 심지어 타지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느라 상황은 더욱 그렇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종강 후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나는 그날 기차를 타고 본가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차창 너머로 고속도로가 보였다. 고속도로의 차들은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고, 가끔은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안정적이었다. 저토록 잘 운전하는 것이 신기했다. 운전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신경 쓸 일도 많고, 피곤하고.


 그런 중 문뜩 아빠를 떠올렸다. 아빠도 운전하기 어려웠던 상황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지만 기억 속 아빠는 언제나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아, 그 순간 나는 탄식했다. 아빠가 늘 쥐었던 운전대가 단순한 운전대가 아니었음을 느낀 것이었다. 아빠가 쥔 운전대는 엄마에게 베푸는 배려이자 아들인 나와 내 동생에게 주는 안심이었다. 가족에게 바치는 화목과 사랑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면허를 따고 난 뒤에는 그 깨달음의 농도가 점점 진해졌다. 운전 연수를 끝낸 나는 또다시 아빠를 생각했다. 이렇게 한두 시간만 운전해도 녹초가 되는데, 서너 시간 넘게 운전하는 아빠가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존경에서 내 감정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아빠처럼 능숙하게 운전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


 물론, 아직 고속도로는 어려워하는 나지만, 열심히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운전대를 잡는 게 익숙해지지 않을까? 가족들을 위해 나를 희생할 기회가 허락되지 않을까? 그날이 온다면 내 아들도 나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는 아빠를 보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도 않아 지겠지. 그 모습은 분명 씁쓸하기도 하겠지만, 조금은 기대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운전대를 잡는다, 그날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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