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 Sep 15. 2023

[에세이] 시티 투어의 추억

엄마에게서 받은 '수용'의 체험

 엄마는 나를 낳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도 일을 한다. 최근에는 일이 더 바빠져서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회사에 머무신다. 그렇기 때문일까, 내게는 엄마랑 단둘이 함께한 추억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내게 엄마와의 추억이 생겼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고담>을 함께 본 것이 그것이다.


 미국의 FOX 채널에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방영했던 드라마 <고담>은 DC 코믹스의 캐릭터 ‘배트맨’이 활동하는 무대를 배경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드라마의 특이한 점은, 아직 배트맨이 존재하기 이전을 배경으로 하여 형사 ‘제임스 고든’을 주인공으로 내새운 수사물이는 점이다. 이전부터 수사 드라마를 좋아했던 엄마에게 이 드라마를 같이 보자고 권했고, 곧 엄마와 함께 고담 시티 투어를 시작했다.


 드라마의 초기 시즌은 분명 수사물이었으나, 시즌이 거듭될수록 초인적․비현실적 인물이 등장했기에 현실적인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엄마는 이제 드라마를 그만 보시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나와 함께 끝까지 드라마를 정주행했고(이 부분이 무척 감사했다), 그 끝에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어느 정도 호감을 느끼신 듯했다.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배트맨 영화 감상을 시작했다. 박쥐를 다루는 초인적인 캐릭터로 배트맨을 알고 있었던 엄마는, 인간에 불과한 ‘브루스 웨인’이 과거의 상처를 지닌 채 정의를 위해 어둠의 기사가 되었다는 비극적 영웅 서사가 마음에 드신 것 같았다. 최근에는 앤디 무시에티 감독의 <플래시>를 엄마와 함께 감상할 기회가 되었는데, 극 중 브루스 웨인이 했던 ‘그 상처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야. 우리가 바로 잡을 필요는 없어. 옛날의 비극에 얽매이지 마’라는 대사에 감명받으신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셨다.


 엄마와 함께했던 배트맨과의 모든 추억이 여전히 내게는 아름답게 남아 있다. 물론 나는 그 이전부터 배트맨의 팬이었지만(영화를 넘어서, 그래픽노블과 피규어까지 수집하는), 엄마와 같이 드라마 <고담>을 보고 여러 배트맨 영화를 본 이후부터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는 내게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됐다.


 이와 같은 경험이 왜 내게는 감명으로 남았을까? 엄마가 취미에 대해 비난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함께 참여해 주셨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만으로 온전히 사랑받는 기분. 그러한 엄마의 수용을 실제로 체험했기에, 정서적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와 함께한 고담 시티 투어 이후, 이제 나는 배트맨을 볼 때면 엄마로부터 받은 수용의 체험을 떠올린다. 그때의 감정을 떠올린다. 배트맨의 의미는 망토 두른 십자군을 넘어, 모자(母子) 관계의 향수라는 영원불멸할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귤과 헛간, 그리고 존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