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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Sep 21. 2023

잊을 수 없어. 이건 차이나 타운이잖아.

영화 <차이나타운(1974)>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났다. 고전 영화가 이렇게 세련될 수 있나 싶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차이나타운>은 1974년 개봉한 미스터리, 누아르 장르의 하드보일드 영화다. 냉혹하지만, 강렬하다.


 ‘제이크 기티스’는 ‘홀리스 멀웨이’의 죽음을 파헤치는 도중 부패한 시스템 속 감춰진 진실을 발견한다. 이 과정에서 복잡한 음모와 ‘에블린 멀웨이’의 충격적 비밀이 밝혀진다. 주인공은 사건을 조사하는 사립 탐정‘기티스’이며, 이에 맞서는 자는 ‘노아 크로스’다. ‘기티스’가 조사하는 미스터리(‘홀리스 멀웨이의 죽음과 물 공급 사업을 포함한)의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편,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 자체를 적대자로 정의했을 때는, ‘기티스’가 직면한 도덕적 결핍, 도시의 어둠, 범죄 세계의 탐욕도 적대자로 볼 수 있다. 어쩌면 ‘노아 크로스’보다는 이쪽이 더 적대자에 적합해 보이기도 하다.


 주인공과 적대자의 대립은 3장 기법에 따라 전개된다. 제1장은 등장인물과 전체 이야기 상황을 다루어야 한다. 즉, ‘기티스’가 ‘멀웨이 부인’에게 남편의 외도에 대한 의뢰를 받는 도입부부터, ‘홀리스 멀웨이’가 익사한 채 발견되는 부분까지가 1장에 해당한다. 제2장에서는 그 상황이 진척되어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문제를 다루어야 하기에, ‘홀리스 멀웨이’의 죽음 이후부터, ‘에블린’이 ‘홀리스 멀웨이’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리는 부분까지를 2장으로 볼 수 있다. 제3장에서는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는가를 다뤄야 하므로, ‘홀리스 멀웨이’의 안경이 저택 연못에서 발견되는 부분부터, ‘기티스’가 죽은 ‘에블린’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종결부까지를 3장으로 본다. 물론 3장 분할은 공식이 아닌 원형일 뿐이지만, 이것이 적절히 활용된 것을 볼 때, 본작의 구조적 안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3장 구조는 소설의 스토리텔링 구조와 유사하지만, 소설은 인물의 심리를 서술로 표현할 수 있는 데 반해 영화는 그럴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 영화는 심리 표현을 카메라로 포착해야 한다. 그렇기에 소품과 배우의 연기가 중요하다. <차이나타운>은 그러한 내면의 외면화를 첨예하게 표현한다. 특히 ‘기티스’가 ‘에블린’의 아버지 ‘노아 크로스’를 언급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심리는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태우던 담배가 있음에도 새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에블린’이 아버지에게 가진 높은 강도의 불편한 감정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뒤이어 ‘기티스’의 대사를 통해 이 행동을 또 한 번 짚으며 부녀(父女) 관계를 재강조한다.


 이렇듯 복잡한 내면을 드러내는 연기와 연출은 ‘불확실성의 힘’를 강화한다. 불가사의한 사건을 파헤쳐 갈수록 ‘기티스’는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지만, ‘에블린’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기억하는 관객은 무언가 더 숨겨진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노아 크로스’의 대사, “뭔가 아는 것 같겠지만 자네는 아무것도 몰라.”는 이러한 정서적 반응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관객은 결말을 예측하는 등 영화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한편, 본 작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세븐>과 비슷한 이야기 세계를 지니고 있다. 비록 하드보일드의 정도는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범죄와 미스터리 요소에 대한 수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반전을 포함하며, 결말 역시 암울하기 때문이다. 핀처 감독이 <차이나타운>을 인생 영화라고 언급한 점을 볼 때, 감독의 작품이 <차이나타운>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선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영화 <차이나타운>은 ‘좋은 스토리’라고 말할 수 있다. 시나리오가 갖추어야 할 필수 요소들의 조화롭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나온다. “잊어버려, 제이크. 여기는 차이나타운이잖아.” 하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은 냉혹하나 강렬한 분위기, 흥미진진한 전개, 쓴맛이 남는 결말 때문에 결코 <차이나타운>을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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