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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ssence Feb 20. 2024

‘늙으면 죽어야지’를 영화로 설명하는 법

‘소풍’, ‘플랜 75’가 그리는 노년의 삶



(영화 '플랜 75', '소풍'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를 지나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한국,  초고령화 사회에 이미 돌입한 일본은 노년의 삶에 관심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비슷한 시기에, 노년을 다루고 있는 영화들이 두 나라 모두에서 개봉했다. 두 영화, '소풍'과 '플랜 75'는 삶과 죽음,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다루면서 관객에게 여운을 남기는데,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소 상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플랜 75'는 고령화 사회를 가장 먼저 경험한 나라인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7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자발적으로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정책 '플랜 75'가 도입된 일본 사회를 주요한 내용으로 다룬다. '소풍'은 표면적으로는 절친이자 사돈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세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플랜 75'와 '소풍'은 노년기에 직면하는 어려움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작품의 노인들은 모두 삶을 계속해서 영위하기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플랜 75'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이 주를 이루고, '소풍'에서는 건강 문제가 주를 이룬다. '플랜 75'의 미치는 78세의 나이에 호텔에서 일할 정도로 일할 능력이 있지만 모종의 사유로 해고된 뒤에 경제적 문제를 크게 겪는다. 결국 10만 엔을 지원해 주는 플랜 75 안락사 프로그램에 등록한다. '소풍'에서 은심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고, 금순은 허리 문제로 대소변을 가리기도 어렵다. 그리고 은심과 금순은 자식 세대와의 갈등 역시 겪고 있다. 공통적으로는, 노년기에 겪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끼치는 정서적 영향 역시 두 영화 모두에 존재한다. 이렇게 두 영화 모두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겪을, 혹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결말부로 치달으면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서 갈린다. 피상적으로 볼 때는 죽음을 제도로 만들어버린 플랜 75의 세계가 더 위험해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그 반대다. '플랜 75'는 지속적으로 이렇게 급진적인 정책을 세울 수도 있는 현재의 사회를 경고하고, 그 사회에 안에서 생길 문제들을 나열한다. 그 후 영화의 마지막에는 관객들에게 죽음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우리의 사회가 나아갈 길을 생각하라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지막에 미치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안락사 직전에 센터를 탈출한다는 점에서 더 그러하다. 하지만 '소풍'은 결말이 동반자살을 암시한다는 측면에서 훨씬 위험하다. '소풍'은 금순과 은심의 동반자살을 또 다른 소풍으로 묘사하며 마치 아름다울 수 있는 선택인 것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건강 문제와 자식들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금순과 은심의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결말은 죽음을 미화하는 것처럼 느껴져 관객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마치 ‘건강 문제가 심각하면, 가족과의 갈등이 심각하면, 소풍을 떠나자.’라고 보일 정도로 느껴져서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오싹함이 들었다.




물론 현실에서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노령화 문제에 대해 영화가 쉽사리 답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낳을 수 있는 문제와 현상에 대해, '플랜 75'는 지금의 사회로 가다가는 숭고함의 탈을 쓴 자살 종용이 나올 수 있다고 경고함에 반해, '소풍'은 삶은 고통이니 빨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넌지시, 그러나 꽤나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가미가제'를 찬양하면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살까지 미화하던 일본 사회와, '헬조선'을 이야기하면서 빨리빨리를 이야기하던 한국 사회가 보이는 두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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