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결정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남자 친구도 있었고 어느 정도 돈도 벌어 놓았고 부모 세대에서 이야기하는 결혼하기 적당한 시기인 것도 같았다. 아직 젊은 패기가 있어서일까, 아님 결혼을 안 해도 그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결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결혼을 결심하는 그 순간, 물론 고민은 있었다. 유교국 대한민국에서 첫 결혼은 축복받을 일이지만 그 이후의 이혼과 재혼에 대해서는 사회의 따가운 눈총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한 번의 선택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 다시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그 생각이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뭘 그렇게 고민해? 세상 남자 다 거기서 거기야. 그냥 살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함께 할 상대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은 '나'인 것 같다. 나는 어떤 삶을 추구하는가, 내가 꿈꾸는 30대/40대/50대 그 이후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원하는 삶은 남편이 될 이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가. 나는 타인과 함께 살 준비가 되어있는가. 고민은 필요하다. 아주아주 신중하고 오랜 시간 동안. 결혼은 무심결에 산 옷가지들처럼 마음대로 결정했다 필요 없어지면 버릴 수 있는 그런 가벼운 결정이 아니다. 예쁜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결혼사진 작가를 고르는 그 시간과 정성보다는 함께 살아가면서 필요한 규칙을 세우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결혼 후의 삶은 정말 내가 가진 어떤 목표보다 어려웠다. 공부해서 반 등수 높이기, 수능 열심히 준비하기, 대학 입학하기!! 하면 완성될 줄 알았던 내 인생은 그때부터 더 큰 고난의 시작이었다. 학점관리, 토익 관리, 자격증 관리, 취직 준비, 면접 준비. 한 번도 내 삶의 다른 목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취직이 되면 끝날 줄 알았는데... 회사에 오니, 눈치보기, 업무 익히기, 미친놈 상대하기, 직권으로 누르는 상사에게 참고 또 참기.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이를테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라던가, 사회/정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화가 날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등 내가 살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회사에서 대부분을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급급했던 것 같다. 그냥 영화 보고 맛있는 것 먹고 쇼핑하고 수다 떨고 그렇게 아주 1차적인 기쁨을 위해 시간을 소비했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평범하고 행복했었다.
하지만 결혼 후, 나는 혼자였을 때 받지 않은 스트레스가 생겼다. 내가 생각한 결혼생활은 엄청난 낭만이 있었나 보다. 한편으로는 동화나 드라마의 결론이 알콩달콩한 결혼생활이고, 부모님으로부터 보고 자란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은 아니었기에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라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부부이기에 함께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나 혼자 하는 노동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사이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왜 남편은 살면서 필요한 노동을 함께하지 않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머릿속에서 남편은 점점 나에게 모든 집안 노동을 시키는 신데렐라 계모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내 마음속에 미움이 싹트다가 가장 절정을 이루었던 것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다.
그동안의 목표는 힘들면 포기하면 그만이었다. 공부하다가 어려우면 안 하면 그만이고, 회사 다니다 정말 짜증이 극에 달하면 그만두면 그만이다. 그런다고 내 삶이 어떻게 되지 않는단 걸 아니까.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머물렀다. 아무 죄가 없이 내가 원해서 낳은 이 아이는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존재였다. 육아의 어려움을 모르고 출산의 고통에 대해서만 마음의 준비를 했던 나는, 정말 출산 후 한 달이 되어갈 때 이 아이가 다시 뱃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힘들 때 남편은 내 옆에 없었다.
나는 힘들어도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해볼 때까지 해보는 성질을 지녔다. 남편이 원망스럽고 미웠지만 미움도 사랑의 한 종류라 하지 않았던가. 잘해보고 싶었다. 결혼생활에 대해. 끝낼 때 끝내더라도 노력은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너무 힘들더라.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책이나 인터넷/논문을 찾아볼 수 있다. 육아의 어려움 조차 많은 커뮤니티를 통해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해결했는지가 우르르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결혼생활에 대한 궁금증은 어딜 찾아봐도 없다. 인터넷의 답글은 그냥 그려려니 참으라고 하거나 이혼하라는 이야기뿐이다. 어떻게 결혼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곳이 적다. 아주 적지만 몇몇 유튜브 강의에서 이야기하는 관계에 대한 내용 정도? 그 관계에서는 주로 나를 변화시키는, 내가 참는,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함께 변화하는 것이다. 나 혼자의 노력이 아닌 함께. 그래서 결혼한 것 아닌가? 나 혼자 참고 나 혼자 해결할 거면 왜 함께하기 위해 결혼했는가?
고민하고 고민하고 시도하고 참아보고. 약 8년 동안 나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 해보려 한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의 결혼생활도 이곳에서 함께해 보려 한다.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긴 시간 진행되고, 생각보다 중요한 삶의 이벤트이다. 그 중요한 것에 대해서 사부작사부작 이야기해보련다. 참고로 내가 찾은 솔루션은 참을 인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고려해보아야 할 성질의 것이다. 현재 나의 부부관계가 정말 이혼 직전이라 생각한다면 합의하에 상담을 추천한다. 요즘 내 또래(30대 후반)는 상담받는 것이 조금씩 편해지는 분위기인 것 같다. 나 또한 부부관계에 대한 상담은 아니지만 남편과 함께 양육태도에 대한 상담을 받아봤는데 굉장히 만족했다. 단, 마음의 문은 활짝 열고 목표를 향해 변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