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왜 하십니까?
사랑하는 사이니까요. 혹은 앞으로의 내 삶을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요.
결혼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단어가 '사랑'이다. 이 주제는 남녀노소,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많이 다뤄지는 주제가 아닌가 한다. 결혼 제도를 논할 때도 일부일처 이외 다부다처, 일부다처, 다처일부처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데, 왜 그런 제도가 만들어졌을까 생각해보면 (다른 이유도 풍부하겠지만) 사랑은 정의하기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랑이 식었어.
결혼 전과는 너무 달라. 왜 이렇게 변했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자꾸 눈에 보여. 이게 사랑일까?
사랑이 변하니? 사람이 변하지.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 유일한 불변의 진리라고 한다. 과학에서 사랑은 호르몬 분비이고, 그 기간은 3년까지라고 정의한다. 남녀 간의 사랑에 국한되어 있는 것 같긴 하다.
따지고 보면 사랑은 정말 종류가 다양하다. 부모의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불꽃 튈 것 같은 정열적인 이성의 사랑, 동물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나를 사랑하는 것 등등. 많은 종류의 사랑에 대한 공통점을 생각해봤다.
우선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극정성으로 대해준다.
애완견을 사랑하는 분들을 보면, 인권과 비슷한 수준으로 견권을 유지시켜 주신다.
난과 사랑에 빠진 분들을 보면, 하루 종일 잎을 닦고 물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햇볕이 약한 건 아닌지 공기가 탁한 건 아닌지 소통이 불가한 난과 소통을 하신다.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쓴다는 이야기다.
어떤 잘못을 해도 화를 내기보다 이해한다.
정말 사랑에 푹 빠져있다 보면, 평상시에 참을 수 없는 일이 그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는 눈 녹듯 사라진다. 하지만 그 횟수가 늘어나면 그 상황이 문제로 인식되고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문제가 반복되면 사랑이 식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랑하는 것과 문제가 생기는 것은 좀 분리해야 할 이야기인 것 같다. 어떤 것이 중요한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거라 생각한다.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정말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 아깝지 않다. 그런데 보편적으로는 그렇다 생각했지만 많은 종류에 사랑에 빗대어 생각해보니 이것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투자하는 것은 사랑과 비례할까? '투자'에 대해 생각해보면, 투자는 사랑해서가 아니고 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 한다. 어떤 물건을 살 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돈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가방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며 돈을 쓰는 것이고, 애완견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으니 애견호텔이나 미용에 돈을 쓰는 것이고, 낚시라는 취미가 나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낚시용품에 돈을 쓰는 것이다. 그럼 내 남자 친구가 혹은 부모가 나에게 돈을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가치관의 차이인 것 같다. 내가 아이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돈을 많이 쓸수록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목표는, 내 아이의 행복이고, 내가 없어도 혼자서 지혜롭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많은 돈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과 돈을 쓰는 것은 항상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사랑은 비례할까?
연애 고민상담에 많이 등장하는 이슈다. 남자 친구가 게임을 좋아해서, 혹은 친구들이랑 노는 걸 좋아해서 가끔은 나보다 게임/친구들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고민 상담을 하는 것을 많이 봤다. 나도 그런 고민을 해봤다. 다시 한번 그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면, 남자 친구는 나를 만나는 시간보다 게임하는 시간이 더 길었고, 그 의미는 나랑 있을 때보다 게임을 통해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타인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한다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나도 부담스럽다. 그러면 계속 이해하고 만나야 할까? 이성적인 판단으로 남자 친구가 오랜 시간 게임하는 것이 싫으면 안 만나면 된다. '사랑'과 '관계 속 문제'는 다른 개념이다. 문제점까지 사랑할 정도로 열정적인 사랑이라면 가능하지만 그 열정이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헤어지는 것이 답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다양한 종류의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져봤다.
내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 힘들고 내 시간을 갖고 싶다 하면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워라밸이 중요한 가치관이지만 회사에서 승진하고 싶어 일에 매달리는 나의 모습에서, 나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낚시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낚시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부모님을 너무 사랑해서 결혼도 안 하고 취직도 안 하고 그냥 함께하고 싶은 내 아이는 괜찮은 걸까?
위 질문은 모두 보내는 시간과 사랑을 비례한다는 가정하에 던진 질문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어느 정도 비례하지만 절대적으로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어렵다. 사랑은 무엇인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사랑이 아닐까. 지극정성으로 소중히 대하는 것도, 화를 참고 이해하는 것도 어쨌든 기존의 나와는 다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를 변화시켰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 내 아이들도, 내 남편도. 그런데 남편은 왜 이렇게 미운 걸까... 미운 것도 사랑인 걸까... 고맙다가도 미움이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요즘이다. 내가 이기적인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