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 일하면서 여성 엔지니어는 처음 뵙습니다.'
나는 전기자동차 부품을 개발하고 있다.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한 개발 경력 14년 차에 들어서는 선임연구원이다. 올해는 진급에 실패했지만 경력이 꽤 오래된 연구원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나이도 차고 경력도 차서 여사원들 중 경력이 오래된 축에 속한다.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어떤 직업을 갖겠다는 생각을 깊이 있게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에서 가장 불만이 많았던 부분이다. 공부는 해야 했지만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가치관 형성이나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나 장/단점을 인정하고 발전시키는 과정 등 삶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한 가르침은 없었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30대는 비슷하지 않을까. 그냥 잘 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고, 말 잘 듣는 아이였던 난 공부를 하다 보니 더 잘하는 부분이 생겼고, 그래서 이과를 선택했고 그대로 공대에 진학했다. 내가 수험생이던 시절, 전기전자공학부가 따로 생기면서 BK21이나 누리사업단 같은 국가 지원 사업이 많았고 장학금 수여나 취직이 잘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래서 내가 살던 도시의 한 대학의 전기전자공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독립심이 강했던 아이였다. 집안이 넉넉지 않은 것도 한몫하여 반강제적인 경제적 독립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어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장학금을 타야 학교를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대학 캠퍼스에서 공부하는 내 모습이 좀 멋지다고 생각했다. 선진국 교육 시스템에 관심이 많았던 난, 고3보다 대학 때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선진국 문화를 동경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학교생활을 하지는 못했지만, 내 나름 대학교에서 더 열심히 공부하는 내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학점이 좋았다. 자연스레 취직도 잘 되었다. 선순환이 된 것이다.
회사를 선택하면서 갈림길에 들어섰다. 우리 학교는 반도체 특화 학교였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반도체 관련 업계나 공기업/기술직 공무원으로 취직했다. 나 역시 반도체 과목을 많이 들었고 취직의 길도 많았다. 반도체 장비 업체부터 생산하는 업체까지 다양한 곳에서 취업설명회를 개최했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반도체가 급물살을 타며 인기를 얻고 있는 시점은 아니었다. 반도체 사정이 좋지 않아 처음으로 삼성 반도체 사업부 성과급이 핸드폰 사업부보다 낮았고 하이닉스는 무급으로 운영되던 시절이었다. 취직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일단 가능한 모든 곳에 원서를 넣는다. 그리고 연락이 오면 그 기업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여 면접을 보러 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업에 대한 정보는 뉴스에서 나오는 공식적인 것이 대부분이었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표면적인 정보만 가지고 면접에 임하는 것이다. 그렇게 원서를 넣고 나는 반도체 회사 한 곳과 자동차 부품 회사 한 곳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엄청난 고민이 시작된다.
반도체 회사는 업무 강도가 세다. 이미 그건 많은 선배들을 통해서 들었다. 어떤 팀으로 배정될지 알지 못한다.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면 배정이 될 예정이다.
자동차 부품 회사는 정보가 없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에 말에 의하면 워라밸이 좋고 회사가 탄탄해서 연봉도 더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긴 연구소 확정이다. 학부인 내가 연구소에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보통 대기업 연구소는 석박사를 주로 뽑는다.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을 당시, 나는 이미 반도체 회사의 신입사원 연수중이었다. 그 안에 쟁쟁한 사람들끼리 모여 경쟁을 하는데 내가 너무 뒤떨어지고 있다고 생각되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하루 18시간의 스케줄을 강행하느라 몸도 너무 치쳤었다. 자동차 부품회사의 합격 문자를 받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무엇보다 난 워라밸이 좋다는 그 사람의 말에 자꾸 흔들렸다. 그래서 그냥 박차고 나왔다. 자동차 부품 업체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워라밸이 좋다는 것은 회사 문화가 아니다. 그건 팀장이 설계한 팀의 문화다. 나의 워라밸을 대부분 내가 속한 곳의 조직책임자의 가치관과 연관 있다. 어느 회사든 워라밸이 좋은 팀이 있고, 일이 몰려 '워라밸이 뭔가요'하는 팀이 있다. 내가 속한 팀은 워라밸 따위 개나 줘 버려 팀이었다. 자동차 회사는 기존의 엔진 시스템에서 전기차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는 시작점에 있었고, 내가 속한 자동차 회사는 100% 기계공학과 학생들로 이루어져 전기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회사였기에, 전자공학을 전공한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했다. 어느 기업이든 새로 시작하는 사업은 엉망진창이다. 업무에 대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아 우후죽순 처리해야 할 일이 많고 내가 모르는 것도 물어물어 가이드를 만들어가며 해나가야 한다. 그러니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에 업무의 정도나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일머리가 없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위에서 하라면 하는 대로 하는 위치였고 타 팀과의 업무 핑퐁의 완전한 피해자였다. 정말 너무 화가 나서 받아 보기도 하고 혼자 속으로 끙끙 앓기도 하고 그렇게 고생이란 생고생을 하고 있는데, 팀장이 나의 업무강도에 대한 이해력도 떨어지고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팀장은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에게 기구설계를 지시했고, 상사도 없이 협력업체 직원에게 공차에 대해 겨우겨우 배우며 기구설계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기구설계보다 전장 설계를 우선시하는 팀 내 분위기에서 나는 전공에 맞게 회로 설계로 업무 재배치를 요청했다. 그런데 팀장은 공식 회의에서 더 이상의 기구설계 인원은 받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고 난 절망했다. 팀의 업무 범위는 그대로인데, 관련 인원이 받지 않겠다는 것은 내가 요청한 회로설계 업무 재배치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거절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난 사직서를 쓰고 나왔다. 3년 7개월의 회사생활이 끝났다.
여기서 나의 엔지니어 생활이 끝날 거라 예상했다. 너무 지쳤고 상처 받았고 다시는 엔지니어의 길로 들어서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신은 모든 문을 막지 않고 하나의 문은 열어둔다고 하셨던가. 나에게 취업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다. 서울에 위치한 대기업 연구소이다. 내가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신규 인력 채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방에서 25년을 살았던 나에게 공식적으로 서울에서 체류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나는 독립한다는 것에 대한 집안 내부의 위화감을 항상 느꼈다. 내가 아무 명분 없이 홀로 독립해서 살겠다 하면 반대하실 거라는 것이 너무 자명했다. 하지만 직장이 서울이면 독립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또 한편으로는 큰 도시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은 막연한 바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그 이후 10년이 지났다.
현재도 이직한 회사에서 자동차 부품 개발을 하며 아직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 개발품은 에어컨 압축기 인버터, 공기청정기, 구동 인버터 등 변경되고 있지만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해서 더 좋은 것 같다.
나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꼭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달려왔던 삶은 아니다. 그냥 현실에 충실하며 살다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흘러가는 데로 흘러가 보니 여기까지 왔고. 열렬하게 바라던 바가 아니었으나 그게 삶이 되면서 바라는 것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난 현재 진행형 엔지니어다. 물론 엔지니어를 은퇴할 때까지 계속하고 싶지는 않다. 혹은 그렇게 회사에서 내버려 둘 것 같지도 않다. 가장 큰 부담은 개발기간과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압박이다. 어떤 프로젝트도 문제없이 검증을 끝낸 적이 없고, 개발기간에 대한 요구는 더 짧아졌다. 경험이 많다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것은 아니다. 항상 스트레스이고 피가 마른다. 그리고 회사는 어느 정도 경력이 차면 리더의 자리를 요구한다. 리더가 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지금까지 봐온 우리네 문화이다. 아직 우리 회사에서는 매니지먼트와 연구를 100% 분리하지 못한다. 회사 차원에서 나름의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문화는 그렇게 쉽게 바꾸지 않는다. 언제까지 내가 엔지니어로 생활할지는 모르겠지만, 금방 그만둘 것도 아니라서 그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생각에 대해 글을 써내려 가고 싶다.
꿈이 있는 사람에겐 그 꿈을 쫓아가는 것이 길이요,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방법인 것 같다. 꿈이 특별하지 않으면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는 것이다. 먼 목표보다는 아주 가까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해나가며 작은 성공체험을 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기고 무엇인가 되어 있을 것이다. 현재 내가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그 길이 선명하지 않아 빨리 찾고 싶다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책을 곁에 두는 것이다. 생각보다 책은 내가 경험치 못한 부분에 대한 지식이고 세상에 다양함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책으로 간접적으로 살아봄으로써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거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요즘은 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인터뷰 영상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방면으로 접근할 수가 있다. 책 읽는 것이 어려우면 책에 대한 리뷰나 인터뷰 영상으로 먼저 접근하고 후에 책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20대에는 책보다는 노는 게 먼저였고, 30대 들어서 조금 더 책과 친숙해졌던 터라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잘 안다. 재미있는 소설부터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는 그 시작이 '기욤 뮈소'였던 것 같다.
윤여정 배우님이 말씀하셨다.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다. 성격상 쉽게 맺고 끊는 것을 잘 못하니 나 역시도 은퇴하는 그날까지 엔지니어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언젠가는 때를 만나고 빛을 볼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하다 보면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나도 또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한 발자국씩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시작했으니 하루하루 쌓이면 무엇인가 되어 있겠지. 인생은 60부터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