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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마 Jul 12. 2021

커피를 끊는다는 것

Q. 다음 중,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순서대로 고르시오.

① 금연 ② 금주 ③ 금가베 (커피 끊기)


A. 작성자 - 윤마마

① 금가베

② 금주/금연


나에게 금주와 금연, 둘은 실천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가 상당히 낮다. 술자리를 좋아했긴 했지만 술/담배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 소개란에도 쓰여있듯, 커피를 좋아하는 나의 삶에 커피를 앗아가면 나에게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커피는 내게 휴식이고 원동력이고 즐거움이다. 커피 향을 맡으면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내 삶의 가장 기분 좋은 시간은 고요한 카페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맛있는 라테 한잔과 책을 읽는 시간이다. 고되고 고된 재미없는 회사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것도 커피다. 그런데 나에게 커피를 먹지 말라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하지만 2년 동안 위염이 심해진 것, 우리나라는 위암 발병률 1위라는 것, 아빠와 할머니께서 암투병을 하시는 것을 지켜본 나로서는 끊는 것이 답이었다.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위염이 나을 때까지 커피는 없다. 초콜릿도 없다. 카페인을 끊어보자.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못 막느니, 지금 막을 수 있을 때 지켜야 한다.


D+1

정확하게 위장약을 탄 월요일부터 나에게 커피 중단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막상 커피 없이 하루를 살아보니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하루가 커피 없이 시작되고 끝이 날 뿐. 위장약을 먹는 첫날부터 놀랍게도 속이 굉장히 편안했다. 그때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속이 쓰렸었구나. 아무 생각 없이 넘겼던 증상이 약을 먹고 난 후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생각보다 약효가 잘 받는군.

문제는 두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아마도 카페인 중독 증상인 것 같다. 카페인은 혈관을 수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몸에서 혈관을 수축시켜주는 물질이 분비되는데, 커피가 이를 방해한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커피를 끊으니 머리가 깨질 듯 아픈 것으로 추측한다. 일주일 동안은 두통과 피곤으로 너무 힘들었다. 물론 활력도 없었지만 심해진 두통이 활력이 없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집에 와서 틈만 나면 졸았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잠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잠이 쏟아졌다. 일주일 동안은 병든 닭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침울한 일주일이 지나갔다.


D+8

일주일이 지나면서 서서히 두통이 사라졌다. 내 몸이 달라진 패턴을 알고 무엇인가를 해낸 모양이다. 두 번째 주는 수월하게 지나갔다. 그런데 자꾸 무엇인가 먹고 싶다. 커피를 대용할 만한 대체품이 필요했다. 커피와 맛이 비슷하다며 동료가 권해주는 유기농 콩가루도, 카페에서 파는 과일 에이드도, 편의점에서 파는 각종 과일음료/유산균 음료도 그 대체제가 되지 못했다. 커피 대체제로 팥차를 살까도 고민해봤지만 구입하면 과연 먹을까? 대체제는 결국 못 찾았다.

그리고 다시 위가 쓰리기 시작했다. 회사에 있는 동안 신경 쓸 일이 생기면 속 쓰림 현상이 더 심해졌다. 결국 원인은 스트레스인가. 많이 먹으면 소화도 잘 안되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노화의 현상인가.


D+11

언제까지 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상의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속 쓰림 증상이 없으면 매일 먹지 않아도 되고 속 쓰릴 때만 먹으라며 약 처방을 해주셨다. 너무 변비가 심해져서 위장 보호액은 처방전에서 제외했다. 위장약과 유산균만 처방받았는데, 처방해준 유산균이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먹던 유산균이 오히려 더 효과적인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이겠지. 처방된 유산균은 보험도 안돼서 비싸기만 하던데. ㅜㅜ


D+15

다시 월요일. 2주 동안 쉬지 않고 약을 먹었지만 간헐적 속 쓰림이 있기에 일주일간은 더 먹기로 했다. 열심히 약을 먹고 열심히 커피는 마시지 않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커피 마실 때 내가 먹을 게 없어서 늘 고민이라는 것. 난 과일 에이드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커피를 대체할 순 없었다.


D+20

이 정도면 내 생각에 오랜 시간 카페인 없이 살았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버티기가 싫어졌다는 뜻이다. 드디어 20일 만에 따뜻한 커피 한잔 마셨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원샷으로 연하게 주문했다. 커피를 받고 난 아주 오랫동안 커피 향을 맡았다. 


그래 이거야. 너무 그리웠어.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해, 끊이지 않고 커피 향을 맡았다. 마스크를 쓰고 계속 커피잔을 들고 있으니, 친구가 핀잔을 주었다.


친구 : 너 마스크 끼고 있어~ 벗고 마셔

나 : 난 지금 커피 향을 맡는 중이야. 그냥 내버려둬.


오랜만에 맡는 커피 향은 그전에 먹었던 커피보다 더 민감하게 다가왔다. 과일향, 초콜릿향 등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밀하게 느껴졌다. 마스크도 막지 못한 커피 향. 그게 내가 커피를 사랑하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커피가 내 위를 망친 요인은 맞지만 주범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커피를 마시면 장운동이 활발해져 화장실 가는 것이 수월하고 그로 인해 속이 편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이제 커피를 끊는 것보다 보다 덜 마시며 내 위의 상태에 민감하게 관찰하기로 했다. 3주간 면밀히 경험하고 관찰한 결과, 내가 속 쓰림을 느끼는 음식이나 현상이 따로 있었다.


1. 가루 유산균

아침마다 공복에 유산균을 먹는데, 가루 유산균을 먹고 나면 속 쓰림이 생긴다. 알약 유산균은 괜찮은데 가루약이 원인인 것 같다. 앞으로는 유산균은 알약으로만 복용해야겠다.


2. 고춧가루가 들어가 빨갛게 보이는 음식 (떡볶이, 육개장, 닭갈비 등)

나는 기본적으로 매운 것을 잘 못 먹는다. 매운 족발, 엽기 떡볶이, 매운 돈가스, 심지어 교촌의 레드 시리즈도 싫어한다. 나에게 매운 음식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라 생각했는데, 매운 정도의 차이가 있었나 보다. 나에게 그렇게 맵지 않은 음식이 내 위 속에서는 맵다고 느꼈나 보다. 고춧가루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나면 속이 쓰리다. 앞으로는 좀 자제해야지.


3. 샐러드는 내 위를 편안하게 한다.

회사 식당에서 식사 메뉴로 간편 샐러드를 제공하는데 그것을 먹은 날은 오후 내내 속이 편하다. 다이어트가 아니라 내 속을 위해 자주 간편 샐러드를 애용할 예정이다.


4. 과식은 금물이다. 많이 먹을수록 소화가 어렵고 역류성 식도염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트림이 나올 것 같다거나 신물이 올라온다거나 하는 증상 말이다. 그래서 과식하지 않으려 하지만 문제는 모임 자리이다. 술을 마시지는 않는데 자꾸 안주를 먹는다. 이야기하다가 무의식 적으로 계속 안주를 먹고 있다. 이는 과식을 부르게 되는 요인인 것 같다. 음식을 계속 먹지 않도록 계속 되뇌어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이제 하루에 한잔 커피를 마신다. 정말 먹고 싶을 때 제일 좋아하는 커피로 먹는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메리카노보다는 카페라테를 선택하고 빈속에 먹지 않는 걸로 정했다. 끝이 보이는 금욕생활은 가능하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은 뚫고 나갈 자신이 없다. 

속 쓰림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인 것 같다. 신경 쓰는 일이 반복되면 속이 쓰림을 느낀다. 주로 회사 안에서 발생되는 현상이다. 안타깝게도 회사를 그만둘 배짱은 없다. 같은 상황에 놓여도 다른 사람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기도 하다. 나 스스로 스트레스 상황에 무뎌지도록 노력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일일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어쩔 수 없는 나의 성향인 것 같다. 조금씩 유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일들이 다 무슨 소용이요. 지나가면 다 해결되어 있거나 아무 일도 아닐 것을.

일은 일일뿐, 더 이상 심각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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