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즈번 - 론 파인 코알라 보호구역
브리즈번 - 론 파인 코알라 보호구역 (Brisbane - Loan Pine Koala Sanctuary)
무계획으로 숙소만 예약해서 여행을 왔다. 브리즈번에 도착하자마자 내일을 무얼 할까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우린 최대 규모라 하는 코알라 보호구역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영어를 배울 때 동물원을 'Zoo'라고 배웠다. 'Joo'가 아니라 'Zoo'라며 따라 하기조차 어려운 이 영단어를 숙지하고 있었는데, 여기는 'Sanctuary'라는 표현을 쓴다. 즉, '동물원'이 아니라 '보호 구역'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인간 중심적인 단어인 동물원은 사람을 위해 동물들을 잡아다가 가둬두고 돈을 버는 일종의 자본주의적인 의미가 강하다면, 보호 구역은 야생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활동들을 홍보하기도 하고 기부를 통해 동물들을 보호하는데 동참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표현만 다를 수 있지만, 기부를 통해 구조된 동물들을 치료하고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쓰인다는 내용이 큰 차이로 다가온다. 물론 동물원과 동일하게 입장료가 정해져 있다. 동물 체험을 하려면 더 많은 금액을 내야 한다. 실제로 몇 분가량 코알라를 가까이서 보는데 우리는 AUD $60를 지불했다. 4인가족 기준, 원화 약 6만 원. (입장료 제외)
호주에만 사는 코알라는, 사실 야생에서는 자세히 보기가 어렵다. 주로 아주 높은 나무 위에서 전혀 움직임 없이 머물기 때문에 아주 멀리서 코딱지만큼 보이는 게 코알라다. 보호구역의 코알라는 잎이 없는 나무 가지에 앉아있다. 나무 기둥에 유칼립투스 나뭇가지를 꽂아둘 수 있는 긴 통이 고정되어 있고, 코알라는 그곳에 앉아 먹다 자고 먹다 자고를 반복한다. 나무의 높이는 주로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고, 동물 조련사는 매번 나무를 닦고 새 유칼립투스 나뭇가지를 꽂아준다. 코알라는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잠을 자기 때문에 주로 잠자는 모습만 보이는데, 그 모습이 다채롭다.
암컷과 수컷은 가슴의 문양을 보고 구별한다. 수컷 코알라의 가슴에는 반달곰처럼 갈색 무늬가 있고, 냄새를 풍기는데 그 냄새가 그리 좋지는 않다. 느릿느릿 코알라는 활동적이지 않아 마치 구조물의 일부인양 보이지만, 신기하고 귀엽다. 코알라와 관련된 체험은 주로 오전에만 가능하고 오후에는 울타리 밖에서 관찰만 가능하다. 오전 체험 시간에는 주기적으로 코알라가 교체된다. 코알라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방법인 것 같다.
코알라뿐 아니라 호주에 주로 서식하는 악어, 개구리, 뱀, 딩고, 웜뱃 등등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여느 동물원과 비슷하다. 볼 수 있는 동물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곰이나 호랑이 원숭이는 없다. 또 다른 차이라 하면 넓은 초원에서 직접 캥거루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동물과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우리나라의 동물원과는 차이를 보인다.
철문을 열고 입장하면 바닥에 늘어져 있는 캥거루를 만날 수 있다. 캥거루들의 원래 성향인지, 아니면 팔자가 너무 좋아서인지 시원한 그늘에 자리 잡고 늘어져 잠만 잔다. 입구에서 자유 기부금을 낸 후 받은 캥거루 사료를 손에 얹어 캥거루 입 앞에 갖다 대었지만 관심이 없는 듯 콧방귀만 뀐다. 대체적으로 캥거루는 속눈썹이 길고 시선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낙타와 비슷하다.) 마치 모든 것이 귀찮은 듯한 표정이다. 흥미가 없는 지루한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한다. 코알라와는 다르게 캥거루 털은 굉장히 부드럽다. 코알라는 귀여운 외모와 달리 털은 거칠거칠 뭉쳐놓은 털뭉치 같다. 하지만 캥거루는 굉장히 보드랍고 체구가 작은 어린 캥거루일수록 더 보드랍다. 캥거루는 먹이를 받아 먹으면서도 동글동글 토끼똥을 눈다. '먹으면서도 엄청난 똥을 싸는 캥거루란다.'라고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을 언뜻 들었다. 정말 엄청난 똥을 싼다.
캥거루는 에뮤라는 커다란 날지 못하는 새와 같은 공간에 있다. 에뮤는 덩치가 어른만 하고 타조처럼 긴 목으로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 두려움을 준다. 아이들이 흘리고 간 캥거루 사료를 먹기도 한다. 넓은 초원은 캥거루와 에뮤와 관광객들이 모두 함께하는 공간이지만, 한편으로 캥거루만 접근 가능한 공간이 있다. 캥거루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동물 보호사들의 배려인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은 먹이를 잘 받아먹는 캥거루를 찾아다녔다. 지치지도 않는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저기 다른 캥거루가 우리 밖으로 나왔어.' 하며 관심을 보인다. 처음에는 캥거루가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못해 캥거루 먹이를 온통 바닥에 쏟아냈다. '캥거루가 볼 수 있게 입 앞에 가져다 대면 캥거루라 먹을 거야.'라고 했지만, 아직 겁이 많은 6살 둘째 아이는 엄마가 대신해달라며 슬그머니 뒤에 선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캥거루 똥 피하랴, 먹이를 잘 먹는 캥거루를 쫓아다니랴, 바닥에 쏟아진 캥거루 먹이를 다시 손에 담고, 다시 한번 캥거루 입 근처에 용기를 내어 먹이를 준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용기를 내어 캥거루 먹이를 주는 아이다. 이렇게 또 한발자국 나아간다.
한국 놀이동산과 비슷하게, 올빼미나 독수리 등 조류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실제 날아다니는 새를 볼 수 있는 시간도 있다. 조련사들에게 일부러 새들이 관중들 위로 날아다닐 수 있게 유도한다. 또 하나 신기한 쇼가 있다면 양치기 개(보더콜리)의 양몰이 공연이다. 조련사의 사인에 맞춰 개는 양을 몰고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는다. TV에서만 보던 양몰이를 보게 될 줄이야. 그나저나 보더콜러, 너 좀 똑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