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이면 전세 만기다. 전세 연장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날로부터 나는 틈틈이 정리를 시작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쌓아놓은 물건들, 빛을 보지 못하고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처분하기로 했다.
유명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한다. 벽면 한가득 책을 모아놓은 사람, 평상시 예사롭지 않는 스타일을 보여주며 의류/소품/신발을 모아놓은 사람, 피규어를 모으는 사람, LP를 모으는 사람, 요리를 좋아해서 다양한 식재료/식기/주방용품을 모으는 사람, 청소 도구를 모으는 사람. 자신의 수집품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맥시멀리스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맥시멀리스트로 살아간다.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는 것, 그것을 정리 정돈하고 유지하는 것, 맥시멀리스트로 살아가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 그 때문에 좋아하는 분야 외에서는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 나는 특정 제품을 수집하는 취미는 없으니 전반적인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의 삶이 힘들어 좋아하는 물건을 수집할 에너지가 없다.
물건을 사면 사용하고 정리를 해야 한다. 용도와 사용빈도를 고려하여 적절한 그 물건의 자리를 정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먼지 청소도 해주어야 한다. 일련의 이 과정을 없으면 이 물건은 오래 사용되지 못하거나 다시는 찾지 않게 돼버린다. 어느 순간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다 보면, 나는 이 물건을 왜 산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 충동성을 참고 물건을 사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이 정리하는 시간과 과거의 돈을 절약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자괴감이 든다. 어쩌면 나는 귀찮은 예쁜 쓰레기를 돈을 주고 산 것이다. 지금 당장 갖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생의 큰 번아웃이 오면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정리정돈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두 아이들과 물건의 정리 개념이 나보다는 덜한 남편과 함께하다 보면 집에는 온갖 물건이 너부러져 있다. 나의 모든 업무 중 시간을 가장 적게 투자하는, 우선순위가 낮은 업무가 집안일이다. 별로 하지도 않는 집안일 중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리다. 아이들 놀잇감, 내가 사용하는 물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물건, 때 되면 바꿔줘야 하는 이불이나 옷, 아이들이 커가면서 처분해야 할 장난감, 주방 및 냉장고 재고 관리, 썩어나가는 식품 정리, 유통기한 확인,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은 라벨링 하여 정리, 공간 활용 및 동선 최적화 정리 등등 생각보다 정리의 범주는 굉장히 많다. 가끔씩 수년 동안 사용되지 않는 물건들을 처분한다. 처분하고 난 뒤 생긴 공간은 더 활용도가 높여지고 삶이 여유로워진다. 처분을 반복하다가 보면 물건을 구입하고자 할 때 이 물건의 활용도나 가치에 대해서 여러 번 아주 넉넉한 시간 동안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물건이라면 가격이 조금 나가더라도 구입한다. 최저가를 찾느라 또 다른 일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필요한 만큼 가치를 소비할 수 있다 생각하려 노력했다. 가격이 아무리 저렴해도 필요하지 않으면 거들떠보지 않는다. 정리를 몇 번 해본 경험상 이 물건은 몇 년 뒤 나의 사간을 투자하여 정리하는 그 시점에 버려질 것이다. 그럼 난 시간과 돈을 모두 낭비하는 것이니까.
최종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조금 더 비싸게 사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비용도 아낄 수 있지만, 무엇보다 나의 일을 줄여준다. 물건이 없으면 나의 정리하는 시간도 자연스레 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경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일석삼조. 이것이 내가 미니멀을 꿈꾸는 이유다.
아이들의 작품을 정리한다
가장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아이들의 창작 활동 결과물이다. 집에서, 학교에서, 돌봄 교실에서, 미술학원에서 만들어온 작품들은 버리기가 아쉽다. 다시 돌아오지 않은 내 아이의 일곱 살, 그 작은 손으로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 또는 더 예쁘게 하고 싶어서 집중했을 그 시간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감탄하게 되는 그 작품들을 버리는 게 너무 아쉽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점 결과물들은 쌓여가고, 그 위에 먼지도 함께 쌓여간다. 이 결과물들을 이고 지고 살 수는 없다. 결국은 처분해야 하지만, 그냥 버리기가 아쉬워 작품 사진을 남겨놓는다. 미술관 큐레이터의 심정으로 조명이 가장 예쁜 계단 한 구석에서 작품 사진을 찍고, 필요시 구도 편집을 하고, SNS에 올린다. 그리고 정말 아쉬운 작품들은 선반 위에 전시하기 위해 남겨둔다. 그리고 나머지는 잘게 잘게 부수고 분리수거할 부분을 정리해서 쓰레기봉투에 담는다. 부수면서도 아쉽고, 아이들의 외침도 안타깝다.
'엄마 내가 열심히 만든 건데, 부수는 거야? 안돼 ㅠㅠ'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미니멀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한다. 엄마가 너의 작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두고두고 보고 기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럼 아이들도 수긍한다. 아이들도 다른 정돈된 집을 방문했을 때의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큰 짐을 정리하는 것 같아 시원하면서도 내 아이가 열성을 쏟아부은 이 작품을 버려야 하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아이가 집중한 그 시간과 그 노력과 그 열정을 나는 기억한다. 그 시간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아이도 그 몰입안에서 행복했으리라.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가 혹시나 나중에 관련 일에 종사하게 되었을 때는 이런 너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결과물들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너의 작품들이 엄마에게 행복을 주는 것처럼.
정리하다 부러진 내 손톱. ㅠㅠ
깨끗하고 정돈된 공간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단지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할 뿐이다. 지금은 엉망인 우리 집이지만, 언젠가는 그 미니멀의 끝판왕이 되는 그날까지, 주말에 조금씩 나의 에너지를 정리정돈에 소모한다. 단, 지치지 않을 만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