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삶의 행복, 두 딸내미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서

by 윤마마

컴컴한 새벽 잠결에 아이가 나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이야기한다.


"사랑해, 우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그 순간의 행복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잊기 전에 어서 빨리 노트에 적어 둬야지. 그 글귀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몰래 웃음이 난다. 인생은 해야 할 일을 처리하기 위한 삶의 연속인 것 같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보다는 내가 행복한 일에 몰두하고 싶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 시간이 세상 행복하다.


사실 나는 한국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싫어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 했다. 그 말이 무색하리만큼 나는 생각보다 이른 28살에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다. 어쩌면 나는 결혼은 거부하지만 아이는 원했는지도 모른다. 커리어 우먼을 꿈꾸었던 내가 왜 아이를 원하게 되었을까?


20대 회사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희망차고 밝은 미래를 꿈꾸기보다 몰아쳐오는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 혼나고, 숙련된 지식과 노하우가 없어 업무를 빠르게 쳐내지도 못해 쌓여만 갔다. 확신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해 업무 처리 속도는 늦어졌다. 일은 쌓여가고 그로 인해 선배사원의 가르침보다는 꾸중을 받을 때가 더 많았다. '어떻게'가 빠진 업무 지시로 실패나 실수에 대한 후폭풍은 모두 내 몫이었다. 결재선에 사인한 팀장조차 검토하지 못한 실수는 나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고,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나는 난도질당한 순두부처럼 으스러졌다.


매일 아침 7시 15분이면 기숙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업무 숙련도가 낮으니 당연히 업무 시간이 길어졌고 샛별을 바라보며 집에 돌아가던 기간도 종종 있었다. 집중적으로 밤샘 작업하는 기간을 빼놓더라도 당시 암묵의 퇴근시간인 7시까지 거의 12시간을 회사에 있으니 내 체력이 국가대표급이지 않는 한 버티기가 힘들었다.


당시에는 그 삶을 바꾸기 어려웠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체력을 늘리려고 노력했다. 한창 젊은 20 대였으니 어쩌면 가능했을지 모르겠으나, 장기전으로 보면 그렇게 사는 삶은 나를 지치게 만든다. 그렇게 폭풍우가 휘몰아쳐지고 난 후 내 시간이 생기면, 나는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해 널브러져 있기 일쑤였고 엄청난 상실감을 맞이했다. 내 삶에 대한 비관과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헛헛함이 내 세상을 지배했다. 지독히 외로웠다. 어쩌면 나는 그 알 수 없는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것 아닐까. 매일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에게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 헛헛함이 채워지지 않을까 했지만, 결론은 실패했다.


우리는 오랜 기간 연애를 했기 때문에 어쩌면 그 익숙함이 문제 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다음 나의 선택은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면 무뚝뚝하던 남자들도 자신의 아이를 보며 달라지는 모습을 보지 않나. 그런 환상에 빠졌던 것 같다. 젊었을 때 나는 아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귀엽다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래도 내가 아이를 갖겠다고 생각한 것은 정말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 잘 못 지내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감정의 교류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불안을 떨쳐버리는 사람이다. 즉,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다. 연애할 때 가장 매력이 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연락하고 최대한 맞추려 노력하고 마음 깊숙한 곳까지 다 내어주다가, 내가 원하는 사랑을 얻지 못하면 상처받고 힘들어한다. 조금 더 그 시간을 견뎌냈다면 난 어쩌면 혼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로부터 얻는 행복보다는 헛헛함과 괴로움이 더 컸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피난처로 결혼과 아이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고 첫 2~3년은 후회하리 만큼 힘들었다. 아이가 예민했고, 잠도 잘 못 잤고, 온몸은 망가졌고, 할 일은 미친 들이 몰아쳐오고, 남편과는 주말부부였고, 주말마저 남편은 육아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책에서 본 육아는 정말 다 헛소리들로 가득했다. 그때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또래 아이를 키우는 다른 엄마들과 가끔 만나서 수다 떨고 커피 마시는 그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처음 3년은 엄청난 후회를 했다.


하지만 항상 나빴던 것은 아니다. 아이는 성장한다. 어제 고민했던 문제는 내일이면 해결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자신과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나도 같이 성장한다. 아이는 내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인지, 내가 돈이 많은지 적은 지, 내가 예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아무런 편견이 없이 정말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 내 품에 안긴 작고 따뜻한 생명체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포근함을 느끼게 준다. 일이 힘들고 몸이 녹아들었지만 혼자 살 때처럼 마음이 헛헛하지 않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그러다가 내가 더 큰 사랑을 받게 된 것은 둘째가 태어났을 때다. 대부분 첫째보다 둘째가 눈치가 빠르고, 애교가 많다. 그런데 성향조차 확연히 다른 아이가 나타났다. 첫째는 사회적 민감성이 낮아 내 기분에 대해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둘째는 사회적 민감성이 굉장히 높아서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내 표정에서 분위기를 잘 잡아 냈다. 내가 시무룩하고 있으면 만 2살도 안된 아이가 갑자기 와서 와락 안아준다. 그리고 내 눈을, 내 표정을 보려고 노력한다. 나를 이렇게 알아봐 주고 걱정해 주는 작은 생명체가 내 맘에 충만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면 다시 내 불안과 불만은 스르르 사라진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내가 범죄자였더라도, 이 아이는 나를 이렇게 사랑해 줄 것이다. 내가 가난한 능력 없는 부모더라도, 이 아이는 나에게 긍정과 희망을 줄 것이다.


지금이 행복해다. 딸아이 둘이 미워하고 서로를 향해 뾰족한 가시 같은 말을 던질 때마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상해 하지만, 또 서로를 위로해 주고 챙겨줄 때마다 사랑스럽다. 행복은 내가 느끼는 만큼 내게 오는 것 같다. 그냥 평범한 일상일지 모르지만, 나는 속상하고 짜증 나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에 조금 더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더 머무르고 싶다.


다시 태어나는 기회가 주어지면, 결혼은 생각해 보겠지만 아이는 꼭 낳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