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삽시다.
"엄마 엄마, 그거 있잖아. 그 된장국 닮은 욕. 아까 저 언니가 그 욕 했어."
된장국 닮은 욕?
한참을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공정하지 못한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나에게 공정하지 못한 것뿐 아니라, 약한 자에게 공정하지 못한 것을 보면 화가 났다. 그런데 마음만 항상 그랬을 뿐, 그것이 행동을 통해 변화를 이룰 정도로 강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행동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나는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제 갈 길을 가지 못하면 마음속에 이물감이 생긴다. 정해놓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 물건이 없어도, 정돈되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도 마음속 이물감을 일으켰다. 머릿속에서 이미 "정의"가 이루어진 개념, 물건, 행동들은 그 기준선을 조금만 넘어도 불편했다. 정도에 대한 기준도 다른 사람들보다 높았던 것 같다. 이러한 내 성향은 자기 검열로 수차례 나를 옥죄어 피곤하게도 하지만, 함께 사는 사람도 힘들게 한다. 기준은 나로 맞추되, 함께 사는 동거인이 공평한 업무 부담을 하지 않으면 나는 항상 스트레스 속에 살아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행동을 통해, 잔소리를 통해 변화를 이를 정도로 강하거나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서, 업무 노동 강도는 내가 항상 높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한 화가 항상 마음속에 응어리져있다. 나의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는, 최대한 불필요한 감정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모른 척도 해보고 있지만, 선천적이 내 성향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작은 아이가 화가 날 때를 보니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뱃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큰아이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졌다. 화장실 불을 끄는 것,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것,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이 큰 아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인 것이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큰아이는 지나가는 자리마다 흔적을 남긴다. 먹던 과자 껍데기, 방방 곳곳 켜져 있는 전등불, 자주 잃어버리는 소지품은 작은 아이와는 정말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그래서 작은 아이는 항상 큰아이와 함께면 혼자 스트레스를 받는다.
"언니, 화장실을 썼으면 불을 꺼야지."
"언니, 내 물건을 빌려갔으면 쓰고 돌려줘야지. 왜 이게 언니 방에 있어?"
"언니, 쫌 잘 좀 챙겨."
항상 큰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이기 때문에, 항상 좋은 자리, 좋은 물건을 차지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첫째라는 특징이 아이를 더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작은 아이의 마음속에는 항상 언니 뒤치다꺼리하느라 힘든데 항상 좋은 것만 차지하는 언니가 너무너무 미웠을 것이다. 마음에 쌓아두고 쌓아두다가 견딜 수가 없으면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삼키며 소리도 못 지르고 꺼억꺼억 참는다. 너무 참는 게 안쓰러워 소리 지르고 화를 내라고 조언을 할 정도다.
된장국을 닮은 욕. 작은 아이의 머릿속은 이미 "욕은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욕의 종류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는 알아도 그걸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한다. 그래서 설명하기로 된장국을 닮은 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이 이해가 가자, 나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호탕하고 시원하게 웃었다. 작은 아이는 왜 웃냐며, 나를 무시하는 거냐며 화를 냈지만, 나는 그 아이의 생각지 못한 작은 행동에 웃음을 찾는다.
웃음은 돈처럼 아끼고 쌓아둔다고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현재를 즐기면서 살라고 오랜 지인이 메시지를 보내줬다.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은 지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웃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현재를 즐길 수 있도록,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아무도 내편이 없는 것 같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내편이 되어주는 것이 아이들인 것 같다. 덕분에 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