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나
나의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체육 선생님은 그저 포스 있고, 카리스마 짱짱한 그런 이미지였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체육선생님은 너무 무서웠다. 말을 걸기도 힘들었고, 피하기 일수였다.
엄근진 그 자체다. 항상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쓰고 계시고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계셨다. 또 스킨 냄새는 어쩜 그리 진하던지.. 몽둥이는 왜 들고 계시던 건지 모르겠다. 나는 '체육선생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갖고 싶지 않았다. 왜 체육선생님은 아이들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시작은 설렘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교실, 그야말로 정글이 따로 없다.
처음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의 보이는 모습을 보면 천차만별이다. 비슷한 아이 하나 없고 모두 다 다르다.
웃고 있는 아이, 약간 겁먹은 듯한 표정인 아이,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의 아이 등 참으로 다양하다.
처음 교실문을 열고 아이들을 맞이하며 인사를 한다.
얘들아 안녕? 나는 너희 체육선생님이야.
아이들은 어색한 듯 눈을 피한다. 그러면 나는 더욱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어색할 땐 웃으면 절반은 해결되니까 다 함께 웃자, 하하하하."
내게 엄근진은 보이지가 않는다. 먼저 이렇게 웃으면 아이들도 따라 어색하게, 어이없게 허허허 허 또는 하. 하. 하 웃는다.
이렇게라도 하면 적어도 1cm는 확실하게 가까워진다.
"자 그럼, 처음 만났는데 너희들의 소개는 식상하지? 먼저 나를 소개할게. 음. 나는 학창 시절 운동선수였고, 공부는 지지리도 안 했는데, 또 어떻게 공부를 해서 체육 대학교에 갔어. 대학, 대학원을 거치며 공부를 하고, 방황하다가, 교사는 안 할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며 살았는데!! 이 자리에 있네."
이렇게 말하면 꼭 반에 한 명씩 나에게 어떤 운동하셨어요? 잘했어요?라고 묻는다.
사람이 어떻게 다 잘할 수 있겠는가? 나는 솔직하게 고민하지 않고 다 말한다.
"음.. 나는 말이야... XX(종목)를 했었고 국가대표 상비군도 해봤고, 메달도 따 봤으니까 잘했겠지? 그런데 말이야, 월드클래스는 못 해봤어. 내 또래 친구들처럼 올림픽도 못 나가봤네? 에잇... 넘을 수 없는 그 한계를 느끼면서 부상도 있고, 자연스레 그만두게 되고 공부를 했지!"
반마다 리액션이 너무 다르다.
오~ 단성이 가끔씩 나오기도 하고, 믿지 않는 아이들, 여전히 관심 없는 아이들도 종종 보인다.
그래도 처음 시작은 서로 알아가는데서 시작을 하니깐 괜찮다.
다음 질문을 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서로 눈치만 본다.
확실한 한방을 날려야 한다. 그래야 말을 한다. 입을 열게 해야 한다.
조금 있으면 탈모가 올 거 같기도 해!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얘기 하나로 아이들에게 관심받을 수 있는 건 확실하다.
교실에 웃음이 한가득해진다.
여러 명이 거들며 말한다.
"쌤, 그러면 M자? 원형? 뭐예요? 쌤 진짜 무모하네요.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해요?"
"음.. 머리가 좀 빠지는데 원래 약간 이랬던 거 같기도 하고..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아침에 드라이하면 바닥에는 다 내 머리야. 무모한 거 인정(아이들의 무모는 無모, 털이 없다는 의미다)."
요즘 아이들의 최고 관심사이기도 하다. 확실하게 나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는 우물쭈물 대답한다.
"더 이상 묻지 마라. 선생님 머리카락이 속상해한다."
교실이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된다. 사실 이게 왜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좋아한다.
그리고 조금 진정이 되면 하나를 더 이야기해준다.
"내 키는 XXX고, 몸무게는 XX, (반지를 보여주며) 6년 연애하고 결혼했어!"
그러면 몇몇 아이들이 일어나면서 자신의 키와 나의 키를 견주어본다.
"쌤~ 저보다 작은 거 같은데요? 쌤~ 첫사랑이랑 결혼한 거 맞아요?"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솔직하게 나는 털어놓는다.
"응 좀 작아...(요즘 아이들 정말 크다.) 왜 그렇게 못 컸나 몰라. 너희 밥 많이 잘 먹어, 나처럼 작으면 내 앞에 아무도 없어. 무조건 1번이야. 첫사랑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고, 아내한테 첫사랑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하자.."
이렇게 시시콜콜 가벼운 이야기로 나를 오픈하면 아이들의 눈빛이 20분이면 ㅡㅡ 모습, 무표정에서 ^^ 이렇게 변한다. 이런저런 자잘한 이야기가 오가면 벌써 첫 소개 시간이 끝나버린다.
한결 가벼워진 첫 만남을 만들었다. 이제야 진짜 수업 이야기를 해야 아이들이 듣는다. 남은 시간에는 올해는 어떤 수업을 하고, 어떻게 뭘 할 거고,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며 첫 만남, 첫 시간을 끝내고 나온다.
아이들은 관심이 없는 척하는 게 분명하다. 분명히 몰래 몰래 다 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두 팔 벌려 '너희와 함께 하고 싶어, 너희를 알고 싶어'라고 계속 알려주면, 알아서 나를 먼저 찾아주고 수업도 한결 편하다. 너무나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시작은 다소 무모했지만, 이렇게 나를 살짝 공개하며 양파 같은 매력을 하나씩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내게 보답을 하듯 잘 웃고, 더욱 열심히 활동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학기 중반쯤 되면 종종 다른 선생님들이 묻는다.
"체육쌤~ 뭘 하길래 애들이 그렇게 좋아해요? 뭐만 하면 체육 쌤만 찾아요. 아니 왜 우리 반 학생들이 이 체육쌤만 찾는데요? 담임 내버려 두고 쌤만 찾아. 속상해"라고 말한다.
"저는 그냥 약간 머리 빠지는 것만 같다고 했는데요?"
"네?"
"그러면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던데요? 낙엽만 굴러가도 그게 좋은 나이잖아요! 하하하하"라고 말한다.
듣는 선생님이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 처음, 좋든 나쁘든 언제나 처음, 시작이라는 단어는 늘 설레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와 같다. 그리고 체육선생님이라는 이미지가 바뀌길 기대해본다.
얘들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