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이름으로 견뎌내는 오늘(3)

PART3. '엄마'와 '나'사이의 충돌

by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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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 나는 축복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드는 파도 속에 서 있었다. 주변에서는 “엄마가 됐다”는 축하와 환호가 쏟아졌지만, 정작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멍했다.


내가 출산을 했다고? 아기가 나왔다고? 내가 엄마가 됐다고?


출산 후 입원해 있던 3일 동안에도 그 사실은 좀처럼 실감되지 않았다.

그러다 조리원에 가면서, 모유수유라는 걸 시작하면서, 비로소 ‘엄마’라는 이름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제서야 내 몸은 산산조각 부서지듯 아파왔고, 하루에도 몇 번씩 울려 퍼지는 수유콜 속 “○○엄마”라는 호칭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 이름은 따뜻하면서도 낯설었고, 그 부름 속에서 나는 이제 이전과는 다른 길 위에 서 있음을 실감했다.

출산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현실은 곧장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낮과 밤은 사라졌고, 아기의 울음이 곧 나의 시계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와 편안함은 잠시뿐이었다.


수유, 트림, 기저귀 갈이, 다시 수유… 끝없는 반복 속에서 하루는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낮과 밤이 없다는 건 나를 시공간과 단절시켰고, 내 생체리듬과 심리 리듬은 서서히 무너졌다.


몸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아기의 울음 앞에선 쉬는 법이 허락되지 않았다. 너무 힘들면 아기를 안고 같이 울었다. 새벽수유를 오래 하다 보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창이 어스름한 새벽빛으로 물들면 괜히 울컥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제대로 잠도 자고, 편하게 밥도 먹고 싶었다.


내 시간과 내 삶이 많이 그리웠다.

“엄마니까 당연하다”는 말은 자주 들렸지만, 그 당연함 속에서 나는 더 자주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5개월이 흘렀다. 아기는 조금씩 스스로 몸을 움직였고, 귀여운 표정들을 짓기 시작했다. 모유와 분유를 넘어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사람다운 리듬을 조금씩 찾아가는 듯했다.


자그마한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설 때면, 세상은 이미 ‘엄마’라는 하나의 굴레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친척과 이웃의 ‘괜찮냐’는 다정한 말들 뒤엔 기대와 판단이 숨어 있었고, 아기가 잘 웃는 날에는 칭찬이, 나의 조그만 실수에는 조언과 훈계가 따라왔다.


특히 SNS엔 완벽한 육아 풍경이 넘쳐났다. 예쁜 이유식 사진, 잘자고 잘 먹는 아기, 개월에 맞는 아기의 발달, 반짝이는 육아템들. 그 안에서 내 현실은 자꾸만 초라해졌다. 늘 ‘우리 아기는 아닌데?’라는 생각만 가득해 육아 관련 SNS를 보지않게 됐다.


누군가는 “시간이 약이다. 그때가 제일 좋을때다.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했지만, 그 말에 기대어 버티는 나와, 그 말이 현실을 축소하는 것 같아 불편해하는 나 사이에서 나는 또 흔들렸다.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가 때론 큰 상처가 되기도 했다. “아직도 통잠 안자?” “너무 힘들면 도와달라고 해” — 이런 말들이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도움의 경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말들이 많았다. 사회적 시선은 보이지 않는 규범을 만들었고, 그 규범은 ‘엄마다움’에 맞지 않는 행동을 자꾸 숨기게 했다.


결국 나에게 남은 건, 사람들의 시선과 나의 현실 사이에서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느라 내 마음을 잃지 않으려면, 작은 일상에서조차 내가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불안했고, 흔들렸다. 어떤 내가 되고싶은지조차 정리되지 않았는데,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나를 재촉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에서 두 목소리가 부딪혔다. “이 정도면 괜찮아, 잘하고 있어.”

“아니야, 더 잘해야지. 엄마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냐?”

내 안의 대화는 끝없는 재판 같았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모두 나였고, 그 안에서 나는 늘 피고석에 앉아 있었다.


아기를 돌보다가 문득 거울을 보면, “나는 누구였더라” 하는 질문이 저절로 떠올랐다. 책을 읽고 싶고, 글을 쓰고 싶고, 그냥 잠시 멍하니 있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면, 그 순간조차 죄책감이 따라왔다.


엄마이기에 포기해야 하는 것과, 엄마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매일 부딪혔다. 엄마와 나 어딘가 사이에서 늘 저울질했다. 그 갈등 속에서 나는 때로는 나를 다그치고, 때로는 스스로를 감싸 안으며 버텼다.


나는 그렇게 ‘엄마’와 ‘나’ 사이를 하루에도 수없이 오갔다. 아기를 안고 있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엄마였지만, 잠깐이라도 아기가 잠들면 다시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책을 펼치거나, 핸드폰에 메모를 하거나, 조용히 멍때리는 짧은 순간들이 그랬다. 하지만 곧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그 ‘나’는 사라지고 다시 ‘엄마’로 불려나왔다.


두 이름은 늘 충돌했다.

엄마라는 이름은 무겁지만 지켜야 할 자리였고, 나라는 이름은 작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존재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두 이름이 서로를 잡아끌며 나를 흔들었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나는 두 이름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만 살 수도 없고, 예전의 나로만 돌아갈 수도 없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아쉽고 서운했지만, 옆에서 쌔끈쌔근 자고 있는 아기 얼굴을 보면 지금 이 삶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엄마인 나’와 ‘여전히 나인 엄마’를 동시에 품으며 살아내는 것이 지금의 삶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두 이름으로 견뎌낸다.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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