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편지
엄마의 시간을 건너는 중
두 번째 편지입니다.
24. 05.26. 숨막히게 고요한 일요일 오후
아기는 자고 있어요.
남편은 볼일 보러 나가고, 겨우 잠들었다 싶던 아기가 제가 한 줄을 쓰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네요. 요즘 부쩍 낮잠이 줄어서 참 힘들어요. 같이 놀아주자니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겠고, 하품은 하면서도 잠들지 않는 아기를 보며 ‘계속 안아줘야 하나, 너무 안아줘도 안되는데…’ 이런 걱정만 늘어요. 답이 없는 일이 참 어렵게 느껴져요. 누가 딱 정해진 답을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대학 때는 객관식보다 주관식 시험을 좋아했는데, 아이 키우기는 그런 맥락조차 없는 일 같아요. 신생아 딱지를 막 뗀 둠칫이에게 맥락이란 게 있을 리 없겠죠. 하하. (벌써 세 시간째 붙잡고 쓰고 있네요. 중간에 저도 지쳐 잠시 잠들었다가 깼답니다.)
첫 답장을 받았을 때 정말 설레었어요. 현정 씨 마음은 어땠을지, 또 딸기는 엄마와는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실지 궁금했어요. 임신했을 때 먼저 아이를 키우던 친구들이 참 대단해 보였는데, 막상 제 차례가 되니 존경심만 더 커졌어요.
아이가 울 때 화가 난다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어요. 저는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며칠 동안, 아기가 울 때마다 같이 울곤 했거든요. 처음엔 눈물이 왜 나는지도 몰랐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답하고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 잠 부족이 겹치니 감정은 더 쉽게 요동쳤고요.
새벽수유 때도 힘들었어요. 시골이라 적막만 가득한 밤이, 저를 더 고립시키는 것 같았거든요. 개구리 우는 소리만 가득 차는 새벽, 해가 뜨는 순간엔 또 묘하게 신기하기도 했지만요. 현정 씨 글에서 본 도심의 불빛 역시, 그 나름대로 슬플 것 같더라고요. 결국 우리의 상황 자체가 슬픈 시간이었겠지요.
지금은 34일 차, 수유텀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새벽에 두 시간만 자도 개운하다고 느낄 정도예요. 여전히 혼합수유라 변수가 많지만, 언젠가 50일쯤엔 네 시간씩 자는 날이 올 거라 기대하며 버팁니다.
어제오늘은 둠칫이가 찡찡대는 시간이 늘고 낮잠도 줄어, 검색해보니 ‘원더윅스’ 시기더라고요. 모유만 주려 했는데 10분 만에 울어 결국 분유를 주었더니 처음 먹는 것처럼 열심히 먹는 모습에 또 마음이 복잡했어요. 초보 엄마라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조리원 때보다, 집에 온 첫날보다 단단해진 건 분명해요. 둠칫이가 울 때 같이 우는 횟수도 많이 줄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자꾸 스스로에게 말해요.
“나는 둠칫이 엄마다.”
“나는 둠칫이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둠칫이의 성장이 곧 제 성과처럼 느껴지고, 하루가 조금 덜 답답해져요.
지난주 금요일에는 출산 후 처음으로 혼자 외출했어요. 북토크 일정 때문이었는데, 토요일 아침에는 직접 운전해 한의원도 다녀왔답니다. 다음주에는 글쓰기 모임이 있어서 또 혼자 나갈 예정이에요. 두근반 세근반 걱정도 되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 적어보려 해요.
현정 씨는 혼자 첫 외출 다녀오셨나요? 어땠는지 궁금해요. 출산 전 우리의 일상은, 우리가 아기와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는 동안에도 잘 흘러가고 있겠지요?
칠곡은 오늘 밤 비가 온다는데, 서울의 밤은 어떤가요.
무탈히 즐거운 주말 보내셨길 바라며.
슬기 드림.
슬기님, 안녕하세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잘 지내시나요?’라고 묻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작년에 출산한 지 100일쯤 된 친구에게 “잘 지냈어?”라고 물었더니, 눈을 질끈 감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같이 웃었지만, 돌이켜보니 그 친구는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출산 후 30일쯤 되었을 때 한 친구에게 영상통화가 왔어요.
아이를 보여줬더니 신기해하며 귀여워했죠.
그 친구가 저에게 “그래도 예쁘지? 좋지?”라고 물었는데,
“사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예쁘다기보다는 책임감으로 돌보고 있는 것 같아.”라고 답했어요.
슬기님이 말한 ‘성과’ 같은 느낌이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돌보는 것이 저의 주요 업무가 된 것 같았거든요.
저는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가 생겼어요. 그것도 책방을 확장 이전하고 한 달도 안 돼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행복해하기보다는 펑펑 울기만 했답니다. 호르몬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어요. 그리고 임신 12주쯤 되었을 때, 초음파로 아이의 작은 팔다리를 봤을 때서야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서점은 서울에 있고, 집은 수원이라 매일 차를 몰고 왕복 3시간을 출퇴근했어요.
일터와 집이 너무 멀었고, 공백 시간 동안 서울의 월세를 메꾸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웠지요.
매일 고민했어요. 버텨볼까, 접을까.
그런데 사실 답은 하나였어요.
슬기님도 아시겠지만, 책방은 잘 운영해도 생존이 쉽지 않잖아요.
3시간 거리의 서점을, 복귀 시기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유지한다는 건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었어요.
6년 가까이 제 모든 열정을 쏟은 일터를 정리해야 한다는 게 너무 슬프고 허무했습니다.
2024년 1월, 6년의 막을 내리는 날 눈이 펑펑 내렸어요.
덕분에 마지막 날이 조금은 낭만적일 수 있었죠.
출산 예정일은 4월 14일이었는데, 집에서 시간을 보내니 그렇게 우울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도 3월까지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했지만,
출퇴근하는 곳이 없고, 일에 매여 살던 삶에서 갑자기 자유 시간이 생기니
‘자유’라기보다는 ‘공허함’만 느껴졌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임신 기간이 마음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슬기님이 말한 ‘정해진 답과 삶’ 이야기가 참 공감됐어요.
일하던 사람이 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돌보니,
그 일조차 계획적이고 통제 가능한 영역이 되길 바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모유 수유, 일정한 수유 텀, ‘등 대고 재우기’ 같은 것에 집착했어요.
그러다 남편과 대화하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일이 없어진 허전함을 아이 키우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구나.’
슬기님 말처럼 아이에게는 맥락도 없고, 하루하루가 다른데
매일 똑같은 패턴을 대입하려 했던 거예요.
이런 제 모습을 인식하니 어이가 없더라고요.
답안지가 없는 육아에 정답을 만들려는 제 모습이, 이게 교육의 힘인가 싶었어요ㅋㅋ
아이가 낮잠을 잘 못 자던 시기에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한 전문가의 말을 들었어요.
“요즘 수면 교육이 중요하다고 해서 아이를 무조건 눕혀 재우려 하지만,
그것보다 ‘잘 자는 것’이 더 중요해요. 아이가 너무 못 잔다면 안아서 푹 자는 연습을 시키세요.”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답니다.
눕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는 게 더 중요한데,
이렇게 작고 가벼울 때 더 안아줘야 하는데
왜 또 책과 유튜브 속 정보만이 정답이라 믿고 고수했을까—
왜 이렇게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을까 자책도 했어요.
육아 블로그, 유튜브가 너무 많으니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돼요.
“왜 딸기는 통잠을 못 자지?”, “수유 횟수가 너무 많나?”, “너무 안아주는 건가?”
이런 생각으로 다른 아이의 삶을 딸기에게 자꾸 대입할 때면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다짐합니다.
이럴 시간에 딸기를 더 관찰하자.
배고플 때의 울음, 잠투정, 속 불편할 때의 몸짓을 보자.
육아에도 ‘내려놓음’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배웁니다.
워킹맘으로서 힘든 점이 많겠지만,
슬기님이 일하는 시간을 진심으로 존중해요.
그 시간을 잘 지켜내서
둠칫이의 엄마이자, 사랑하는 일을 하는 ‘슬기님 자신’을 단단히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저의 첫 ‘혼자 외출’은 산후검진하러 가는 날이었어요.
혼자 차를 몰고 30분 거리를 가야 했는데, 막 너무 설레더라고요.
그런데 웬걸, 운전하는데 초보 운전 같았어요.
매일 3시간씩 운전하며 다녔는데, 갑자기 운전법을 잊은 사람처럼 버벅거리기 시작했어요.
감각이 줄어든 것 같았죠.
‘재적응 교육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다시 돌아온 감각에 기뻐하며 창문을 열고 음악을 크게 틀었어요.
바람을 맞으며 운전하는데, 아… 정! 말! 행복했어요.
아이를 태우고 갈 때는 혹시 깰까 봐, 너무 흔들릴까 봐,
숨죽이며 조심조심 운전했는데,
그날은 질주 본능이 막 솟구치더라고요.
이게 뭐라고, 당연했던 일상이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줄이야.
와, 벌써 6월이네요.
딸기는 60일이 지났어요.
아, 슬기님. 저는 ‘50일의 기적’보다 ‘60일의 기적’이라 말하고 싶어요.
낮잠도 전보다 푹 자기 시작했고, 새벽에도 잘 자서 새벽 수유는 1회로 줄었어요.
가끔 옹알이도 하고 웃기도 한답니다.
아! 그리고 자다가 깨어도 조금 울다가 스스로 잠들기도 해요. (열 번 중 두 번 정도지만요!)
이 아이만의 패턴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딸기에게는 50일보다 60일이 필요했나 봐요.
‘50일의 기적’을 기다리던 슬기님과 둠칫이의 하루는 어떤가요?
앗, 딸기가 깼네요.
저는 이만 또 밥 주러 가겠습니다.
부디 슬기님과 둠칫이의 하루도 평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