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정해진 시간 동안 해내야 하는 일을 했다. 누구는 나에게 '돈 주고 고생을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논문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해야 하는 일.. 참 싫은 일이었다.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나 모를 만큼 그렇게 방 안에 갇혀 좋게 말해 지적 탐구, 나쁘게 말하면 페이퍼 놀이를 했다.
고난주간 그 고난의 시작을 논문 발표를 위해 한 달간 우울증, 향수병, 또 눈 충혈(눈 안에 뭐가 들어간 것 같은 이물감-너무 모니터만 응시하다 보니). 머리가 멍한 상태, 다른 사람이 이야기 들리지 않는 현상, 식욕감퇴-이런 일은 없었는데.. 저절로 다이어트 효과가 이뤄졌다.
지도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어찌어찌 다 써서 가져간 종이들은 마치 어린아이들 낙서처럼 의미 없는 낙서장이 되어 있었다.
논문 지도하는 것보다 오히려 내 하소연을 들어 주셨다.
병원 가고 싶은 느낌, 논문의 '논'자도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 왜 나는 나약할까? 포기, 도피, 비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지막 '도움 요청'이었다.
그런 고된 하루가 지나갔다. 백지장이 되어 박사님 5명을 모시고 내가 쓴 낙서장을 아주 오랫동안 읽었다.
그러고 나서 이것, 저것 보충해라. 잘했다는 말을 들으니 아~~이제서야 끝이 보이는구나 느꼈다.
슬럼프 동안 지도 교수님의 메시지 하나가 아니었으면 그냥 포기였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돼요"
피 하나 섞이지 않은 그분이 내게 나를 도우려는 마음을 느꼈을 때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그까짓 것 내가 못할까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해서 무식한 나에게 그 낙서 모음장을 대략 완성했다. 아직 남은 2차 심사가 남아 있지만 또 다른 낙서를 모아 깨끗한 낙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학교에 있는 것이 좋다. 언제든 나약한 외국인인 나에게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그들이 나이가 많든, 적든 나는 이들에게 같이 있어 행복하다. 나를 위해 도와주신 우리 학교 선생님들 볼강 샘, 통역으로 도와주신 나라 샘, 내 앞자리에서 동감해 주시는 체첵 샘, 그리고 수다쟁이 몽골어 선생님-진정한 선생님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는 것은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점점 더 못해진다. 이상하다. 그가 '나'라니. 논문 후유증으로 아직도 산만한 나를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