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 다 때려치고 뉴욕으로 21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배용준의 욘사마로서 이것이 마지막 한류일 겁니다.
겨울연가로 히트 친 주인공 배용준 인기가 일본에서 엄청난 소식과 더불어, 사실 한류는 배용준의 인기에 의존해서 곧 사그라들 거라는 기사, 칼럼 등이 많았다.
또 한류는 욘사마 이후 대타가 없을 것이고, 이제 곧 끝날 거라는 연구보고서도 많았다. 그리고 우리도 솔직히 마음속으로 그랬다. 불과 20여 년 전이었다. 모두가 한국 콘텐츠를 -오징어 게임 같은- 서양인들이 볼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 했다. 넷플릭스 실적발표관련 NFLX넷플릭스 주식이 크게 뛰었나보다. 뉴스 자료그림도 계속 오징어게임이다. 작년에 나온 건데
말이다.
지금은 넷플릭스 japan의 구독자를 늘리는 일등공신은 한국 콘텐츠, 특히 ‘사랑의 불시착’의 공이 컸다.
글치. 우리가 뭐 되겠어.
그래도 한국은 꾸준히 했다. 나 역시 열심히 했다. 몽골,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미얀마, 캄보디아, 일본 등에서 한류 세미나도 열고, 한국 드라마 궁과 겨울연가 감독님들 모시고 직접 강연회도 열었다. (그걸 젊은 날에 어떻게 대행사 안 주고 직접 했었을 까? 무지 바빴네)그리고 아시아 콘텐츠 인력을 초청해서 6개월간 함께 수행하며 한국문화와 콘텐츠에 대한 설명을 하는 연수도 마련했다. 국제 공동제작도 참여해서 매년 몇 편씩 방송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나 역시 한류라는 어마한 크기의 컨테이너 선박에 작은 나사못이라도 돼서 열심히 했던 건가라는 자부심이 있다.
블랙핑크도 그렇고 네이버 라인 숍도 있다. 어디든 있다. 아마존에서 프로듀서를 하고 있는 조카도 한국 프로덕트나 컬처가 핫한 느낌이라고 했다. 상상하고 꿈꾸는 대로 엔터테이너들은 한류를 만들어 냈다. 관료나 엘리트나 지식인이나, 연구정책 아니라 딴따라들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특히 뉴욕에서 본 장혁의 더킬러 포스터는 멋있었다.
딴따라들이 만든 꿈들이 이루어졌다.
난 그때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실제로 상상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고, 목격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난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만들 거야
이렇게 노래 부르던 그분도 결국 10년 지나 미국에서 한국 리메이크 드라마를 만들어서 히트 쳤다. 세상에. 그렇게 결심하더니 정말 됐다. 자폐증적 의사가 나와서 따뜻한 휴먼스토리로 미국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나 드라마 작가 할래
전혀 장르와 길이 다른 다큐작가 누나도 갑자기 그러더니 세상에, 히트메이커 돼서 작가로 나타났다. 그래서 그 누나의 작품에는 등장인물 중 하나가 내 이름과 같다. 네 이름이 특이해서 나한테 전화가 와서 쓴다고 했다. 나야 영광이지 뭐.
나는 내년에는 뉴욕에 있을 거야.
정말 있다. 소원대로 됐다. 그러나 아뿔싸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으로 그리지 못했다. 다 때리치고 뉴욕이라는 글을 쓸지는 몰랐다. 좀 계획적이고 구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내가 후회가 됐다. 나는 그냥 이미지만 떠올리지, 스텝 바이 스텝 차분한 계획을 짰어야 했다.
그저 뉴욕에서 번쩍이는 금색 단추의 블랙 블레이저를 입고, 바지는 청바지에 선글라스 끼고, 신발은 이태리 가죽의 스니커즈를 신고, 소호에 있는 작은 이태리 레스토랑에 와인을 마시다가, 맨해튼에 있는 호텔로 들어가서 편히 쉴 거라고만 생각했다. 막연히…
그런데 지금은 남수단의 작은 소년이 멀리서 물을 길어오는 것처럼, 물이 떨어 저서 마트에 큰 물통 하나 사들고 털래털래 걸어서 오는 길이다.
내가 작년에 “앞으로 다짐하며” 꿈꾸던 게 뭐지?
1. 뉴욕에 한 달 정도 머문다.
2. 고흐 그림은 가끔 늘 본다.
3. 내가 잘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급한 성질 죽이고 게으른 성질 파리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4. 상대방에게 친절하고 관대하게 대한다. 그러나 쓸데없는 인연을 만들지 않고 삶에 집중한다.
5. 책을 낸다.
6. 큰 세단을 탄다. - 해치백을 너무 오래 탔다.
7. 나의 콘텐츠를 만든다.
8. 하기 싫으면 안 한다.
9. 돈 받으면 하기 싫은 거 기쁜 마음으로 한다.
그래서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은 그런가 보다. 내가 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할 일이 많은 데 남 걱정 남 신경 안 쓰는 게 좋다.
못 올 거라 했지만 뉴욕에 왔다. 아마 직장에 계속 다니고 있었으면 오기 쉽지 않을 거다. 그러나 한 달 일정으로 왔다.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른 채 그냥 왔다. 이루어진 거다.
그리고 고흐 그림은 “왕창” 봤다. 그의 그림은 런던이나 파리 미술관에서도 봤지만, 이렇게 느긋하게 그의 그림은 본 것은 여기가 처음인 거 같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고흐 그림은 편안했다. 비가밖에 쏟아져서 그런 건지, 사람이 비교적 적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나도 차분했고 미술관도 차분했다. 그 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볼 거도 많고 남들한테 이런 거 봤다고 체크할 만한 미술품 유물들이 아주 쌓여 있다.
하지만 혼자, 비 맞고 온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미술전시 쪽은 이상하게 차분한 느낌이 있었다. 물론 당연히 세계적으로 유명하니까 사람은 기본적으로 많다. 센트럴 파크와 붙어 있고, 주위에 구겐하임 미술관도 있고, 멋진 뉴욕 아파트들이 많아서 놀러가기도 좋은 곳이다.
하지만 차분히 난 서있었다. 단체관광도 아니고 도슨트 가이드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나 자신과 고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나의 여행, 나의 꿈이 한 단계 디딛는 걸 느낀다.
왠지 잘 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