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다짐 - 내가 주체로 사는 것
(다소 전복적이고 해삼적인..아니 체제, 체계와 제도를 무너뜨리는 내용이 있습니다. 본 내용은 집필자의 뇌와 마음이 다를 수 있으니 참고바랍니다.)
꼼꼼 청소를 곧 시작하겠습니다.
로봇청소기는 이 대사를 읊은 후, 방을 청소한다. 이 방에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나와 로봇 청소기밖에 없다.
그렇게 둘 만이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만약, 지구에, 한국에 터진 유독가스 폭탄으로 내가 죽었을 때, 이 로봇청소기는 때가 되면 자동충전되어 성실하게 혼자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책상에 글을 쓰다가 유독가스를 맡고 엎드려 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나를 기억해줄까?
로봇 청소기는 나를 기억하며 혼자서도 꼼꼼청소를 하고 있을 까? 지구라는 별에서..
New York Times는 2009년 3월 25 일자 "외로움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악화시킨다"고 인용했다. 마찬가지로, 2011년 1월 31 일 BBC 뉴스는 외로움을 노인의 "숨은 살인자"라고 선언했다.
외로움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는 데. 일반적인 정의는 "고독 또는 혼자 있는 상태"라고 한다. 다른 정의는 “외로움이 반드시 혼자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가장 중요한 것은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는 인식"이며 "마음의 상태"라는 것이다.
마을 커뮤니티가 사라진 곳에서 이제 외로움과 더불어 '인건비'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면 이제 선진국 시대로 들어왔기에 외로움의 비용은 인건비로 대체된다.
지난번 나의 경우, 욕조의 조명 시스템 교체하러 사람을 불렀다. 나이 든 아저씨니까 최소 3만원을 받고 오신 거다. 물론 아저씨는 3초만에 끝나서 아저씨가 오히려 미안해 했다. 결국 1만원만 받고 가셨다.(조명값 별도) 너무 간단했는 데, 나는 몰랐다. 이렇게 비용이 든다. 혼자 하려면,
어제는 '별'이라는 선배 작가한테 선풍기를 내 차에 실어 갖다 주었다.
다음 다음 주에는 '은작가' 선배 이사하는 데, 옆에 "서있어 주는 기둥서방" 을 맡기로 했다.
이사하는 아저씨들은 대부분 선량하지만 - 괜히 아저씨들이 왔다갔다하는 게 무서워서 내가 기둥처럼 서있기로 했다. 아주 간단한 아르바이트이다. 이런 게 모두가 외로움에 대한 비용들이다.
1인 가구용 이삿날 기둥서방으로 필요하시면 연락바란다. 물론, 좀 난 비싸다. '은'선배에게는 30년간 내가 얻어 먹은 게 있어서다. 그 술값, 밥값은 사실 내가 이사도움이 아니라 집을 사줘야 한다. 어쨌든 공지사항에 강의 연락용 메일이 있다.
스포츠 댄스도 추고, 스탠드 바에 가서 "건전한 만남"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동창회 가서 "옛날 동창"도 만나고, 등산도 갔다가 내려오면서 막걸리 하는 거 아닌기?
모두가 혼자가 된 이야기, 외로움과 상처가 많은 글은 그래서 공감대를 많이 가져온다.
내가 누구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드문 것도 마찬가지이다.
(혼자된 이야기를 폄하, 비하가 아닙니다.)
외로움 이후, 누군가를 재회하는 기쁨은 사실 숨긴다.
창피하게 또 누굴 만나..이러면서. 혼자가 편해..이러면서.
물론 대부분 스토리는 이렇다.
중년에 해당되지만, 3-40대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 솔로 또는 커플도 마찬가지 - 만나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끝을 먼저 생각한다.
지금 내 상대방을 혼자로 만들 수 있고
만나서 행복했던 일이지만 '위법'이라는 이야기
만나서 행복했지만 사회적 지위로 지탄받은 이야기
만나서 행복했지만 돈이 털리는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다.
만나서 행복했지만 자식보기 부끄럽지도 않냐라는 지탄을 받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만나서 행복했지만 오히려 소송과 법정싸움으로 가는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다.
잘 만나다가 성폭행, 성희롱범으로 고발당하는 거 아닌가? 아님 상대방이 그런놈 아닌 가?
그래도, 외롭다면 만나라.
만남을 허하라.
외롭게 사는 것을 무슨 고3수험생처럼,
하던 거 집중해라..그러면서 다른 곳에 눈을 돌려 서예를 하고, 꽃꽂이를 해야하는 가. 왜 읽기도 싫은 독서토론회에 참가해야 하는 가.
왜냐면 당신이 생각하는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당신은 주홍글씨가 새겨진 옷을 입고, 포승줄에 묶인 채 마을을 한 바퀴 걸을 것이다.
사람들은 창문밖으로 토마토와 날계란을 던질 것이다.
왜냐면, 만남을 가져서 나머지 인생을 외롭지 않게 산다는 것 보다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놓지 않기 위함이다.
또 헤어질거야 하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중산층 이상, 엘리트들 출신들은 방송과 채널에 나와 외로움을 참으라고 말하고, 외로움을 병으로 말한다. 왜냐면 그 병을 앓고 나면 무언가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외로움이 아니라 우을증, 그리고 노년에 그냥 "참고 사는 인생'이 견뎌야 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바람 나라, 바람 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이 당신의 외롭지 않은 인생을 주체적으로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과 상대방, 사회에 눈치보기 때문에 외로움을 선택할 수 있다.
또는 현재의 편안함이 외로움을 '이긴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은 내가 또 해보고자 하는 것을 못했을 때도 드러나는 마음심리이기 때문이다.
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일 수 있다.
그러니, 뭐든지 내가 중심이 되서 무언가를 결정한 적이 있는 가?
당신의 무거운 마음, 외로운 마음이 있다면 나가라.
어디로? 춤을 추러 나가라.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