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나이는 추억을 불러오는 숫자가 아니게 되었다.
나이를 떠올리는 일은, 지나온 시간을 세는 일이라기보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묻는 일에 가까워졌다. 숫자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 숫자를 해석하는 방식은 이미 달라졌다.
지금의 나이는 더 이상 과거 세대의 시간표로 읽히지 않는다.20~30년 전의 시간과 앞으로의 20~30년은 같은 숫자를 통과하지만, 그 시간들이 놓이는 여백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같은 나이를 살고 있지만, 다른 시대 위에 서 있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이미 80대 중반에 이르렀다. 의학 기술과 생활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면, 지금의 50대는 90세를 넘어 100세까지 생존할 가능성을 가진 첫 세대로 분류된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점점 보편적인 미래에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 인구학계와 의학계에서 이야기되는 ‘나이 × 0.8’이라는 개념은 이런 변화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지금의 50대는 과거 세대의 40대와 유사한 신체적 활력과 사회적 인지 능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70세 전후의 나이에도 여전히 일하고, 배우고, 사회적 역할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40~50세는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기보다 긴 인생의 새로운 구간에 들어서는 시점에 가깝다. 아직 체력도, 선택지도, 방향을 바꿀 여지도 남아 있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이 긴 시간을 지탱하는 힘은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수입’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진짜 안정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자신을 조절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깝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준비되지 않은 안정은 쉽게 무너진다. 불확실함을 감당하는 힘, 스스로를 다시 조정할 수 있는 유연함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안정이 된다.
그래서 배움은 이 시점에서 하나의 생존 전략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배움은 자격증이나 스펙을 쌓는 일이 아니다.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낯선 환경에서도 다시 설 수 있는 태도를 기르는 과정이다.
20~30대의 불안이 성장의 흔적이었듯, 중년에 느끼는 생소한 불안 또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학습의 일부일지 모른다.우리가 그리는 70대와 80대, 그리고 100세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의 선택과 습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쌓여 미래의 우리의 모습을 만든다. 그래서 지금이 결코 늦은 때가 아니라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가 남은 구간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더 행복한 삶의 후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