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직장이라는 익숙한 궤도에 몸을 싣고, 퇴근 후에는 제2의 직업이라는 낯선 지도를 펼쳐 든다.
낮에는 익숙한 생업의 일과를 소화하고, 밤이 되면 잡히지 않는 제2의 커리어를 설계하려 애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피로가 의지를 앞서고, 머릿속 설계도는 책상 위에서만 맴돌 뿐이다. 한 손에는 생계의 열쇠를, 한 손에는 꿈의 씨앗을 쥐고 그 중간 어디쯤에서 서성이는 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현주소다.
작가 데보라 루스킨(Deborah Luskin)은 50대를 ‘두 번째 사춘기’라고 명명했다. 청소년기의 사춘기가 급격한 신체 변화에 적응하는 시기였다면, 중년의 사춘기는 정체성과 삶의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재질문을 던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크리스토프 포레 역시 이를 ‘두 번째 아돌레상스(deuxième adolescence)’라 정의하며, 중년의 불안은 기존 삶의 의미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증상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지금 우리가 겪는 방황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서 생기는 오류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이라는 다단계 구조 속에서 ‘나 자신으로 다시 서기 위한’ 필수적인 통과제례에 가깝다.
『100세 인생』의 저자들이 예견했듯, 이제 인생은 ‘교육-일-은퇴’라는 단선적인 구조에서 벗어났다. 40~50대는 더 이상 인생의 황혼이 아니라, 여러 번의 학습과 전환이 반복되는 긴 여정의 딱 중간 지점이다. 과거의 20~30대가 짊어졌던 고민의 무게를, 지금의 우리는 40~50대에 다시 짊어지게 된 것이다. 젊음이라는 보호막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살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얻은 셈이다.
때로는 현업의 이름표를 떼고 세상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그 낯설고도 막막한 민낯에 대해 앞으로의 글들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려 한다. 방황을 억누르기보다 그 방황을 성장의 에너지로 바꾸는 법을 함께 고민하고 싶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 지금의 흔들림은 삶의 방향을 다시 잡으라는 우리 마음속에서 울리는 의 정직한 목소리이다.
청소년기의 사춘기가 어른이 되기 위한 혼란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고민은 '현업의 나'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로 홀로서기 위한 통과의례일 것이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길을 찾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직장인이라는 본업을 유지하며 새로운 길을 낸다는 것은, 우아한 산책이 아니라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치열한 과정이다.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고, 자꾸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아 불안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답답함과 불안이야말로 우리가 여전히 '자라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 싶다.
성장통은 살아 있는 것들만 누리는 특권이다. 지금 느끼는 이 막막함이 단순히 나이 듦의 증상이 아니라,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한 전조 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목적지는 아직 희미할지라도, 일단은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실험부터 시작해 보자.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구체적인 실천법과 생각의 단편들을 이곳에 차곡차곡 쌓아갈 생각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우리만의 '실행 로드맵'도 자연스럽게 그 윤곽을 드러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