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이라는 착각, 우리가 매일 서툴러져야 하는 이유
우리는 하루를 시작할 때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고, 식사를 한다. 늘 하던 순서대로 하루의 첫 페이지를 연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본능들 덕분에 삶은 안정감을 얻는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 믿으며 안심하곤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원래부터 당연한 것은 없다. 단지 오래 반복되어 익숙해졌을 뿐이다.
지금의 우리는 수많은 학습의 결과다. 우리는 한때는 숟가락을 제대로 쥐는 법조차 몰랐다. 숱하게 넘어지고, 틀리고, 다시 시도하며 지금의 능숙함에 도달했다. 익숙함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과거의 내가 매일 조금씩 새로워지며 쌓아 올린 시간의 흔적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익숙함도 언젠가는 다시 낯설어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는 데 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지금의 방식이 영원히 통할 것처럼 느껴진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서서히 마음의 벽을 세운다. 그렇게 ‘당연함’은 편안함의 얼굴을 하고 우리를 붙잡는다. 하지만 삶의 환경은 우리가 멈춰 있는 사이에도 쉼 없이 흐른다. 기술이 바뀌고, 일의 방식이 달라지며, 우리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조금씩 이동한다. 내가 멈춰 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조용히 매일 변하고 있다.
이제 과학 기술은 단순히 도구를 넘어 인간의 삶을 재정의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AI가 인간의 판단을 돕고 로봇이 노동을 대신할 것이 확실시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줄 아는가’보다 ‘어떤 질문을 던지며 세상을 바라보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익숙함에 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가 발 디딘 지반은 생각보다 빨리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동반한다. 새 신발을 신었을 때처럼, 처음 얼마간은 발에 잘 맞지 않아 뒤꿈치가 까이기도 한다. 예전 방식이 더 편했던 것 같고, 굳이 이 통증을 거쳐야 하나 싶은 의구심도 든다. 스마트폰을 바꾸면 손에 익은 앱을 다시 찾아야 하고, 새로운 업무 도구를 쓰게 되면 평소보다 더딘 속도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사소한 불편 앞에서도 종종 과거라는 안식처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삶의 변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내가 잠시 '서툰 사람'이 되는 찰나를 견뎌야 한다. 그 과정은 자신감을 흔들고, 때로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여전히 변화의 흐름 속에 살아 있다는 가장 선명한 신호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꺼이 새로워져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세상은 우리가 준비되었는지 묻지 않은 채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멈추지 않고 발전하며, 한 번 익힌 역할로 평생을 버티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나 길어졌다. 결국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움에 적응하고, 다시 배우는 과정의 무한한 반복이다.
불편함을 피하려는 순간, 삶은 고인 물처럼 멈춰 선다. 그 낯선 불편함을 기꺼이 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 수 있다. 매일 아침 당신을 깨우는 것이 익숙한 알람 소리가 아니라, 아직 채 길들여지지 않은 내일의 나를 만나는 설렘이길 바란다. 그 설렘이야말로 우리가 매일 아침 당당히 새로운 나를 맞이할 원동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