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함이 사라져도 남는 당신의 '동사'는 무었입니까?

"누구인가"보다 중요한 질문, "무엇을 했는가"

by 최성호

낮과 밤이 교차하는 애매한 저녁 시간, 노트북을 켜고 오래된 이력서 파일을 연다. 처음 몇 줄은 늘 비슷하다. 회사 이름, 직책, 근무 기간. 마치 내 삶이 고작 몇 줄의 직함만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듯 서글픈 기분이 든다.

이상하게도 그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내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다.


내가 해온 일의 무게는 분명 존재했지만, 이력서 위에서는 그 무게가 잘 보이지 않는다. 직책은 선명하게 남아 있으나, ‘내가 무엇을 해냈는지’는 오히려 흐릿해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었을 해왔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이 질문에 ‘명사’로 답하면 대답은 금방 끝난다. “ ○○회사의 ○○팀장.” 하지만 삶은 결코 명사로만 남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가’를 들여다볼 때 비로소 존재는 선명해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내가 반복해온 ‘행위’들로 만들어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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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를 다시 써보자는 말은 단지 취업을 준비하자는 뜻이 아니다. 내가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움직임을 보여왔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직함이 바뀌면 중심이 흔들리기 쉽지만, 내가 해온 행위를 붙잡으면 단단한 중심이 생긴다. 그리고 그 중심은 다음 일의 방향을 정할 때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리더’라는 문장은 깔끔해 보이지만 정작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자리에 실제 행동을 채워 넣으면 문장은 살아 움직인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상황을 조율한 경험, 고객의 요청사항을 정리해 팀원들이 바로 일할 수 있게 업무를 쪼개어 전달한 일, 막막한 상황에서도 결정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다한 순간들이 그렇다. 이런 문장들은 직책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회사를 떠나도 내 몸에 배어 있는 진짜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력서를 다시 쓰는 일은 나를 향한 일종의 ‘점검’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가장 잘 움직였는가? 무엇을 꾸준히 반복해 왔는가? 어떤 장면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정리하고, 정확하게 전달했는가?


핵심은 추상적인 성격 묘사가 아니다. '꼼꼼하다'는 형용사 대신 '불량 원인을 단계별로 분석해 재발 방지안을 수립했다'는 성취를 적어야 한다. '소통에 능하다'는 말 대신 '갈등이 불거진 회의에서 합의안을 도출하고 이를 문서화해 실행을 이끌어냈다'고 적는 것 그것은 단순한 평가가 아닌 기록이며, 자신이 살아온 삶의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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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된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낸 사람’이었음을, 그동안 명사라는 틀에 갇혀 있었지만 사실은 역동적인 동사로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이력서의 문장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어떤 회사 출신’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어떤 직책’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결과를 만드는 사람’으로 말이다.


이력서를 쓴다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동시에 과거를 가장 현실적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내가 어떤 행위로 살아왔는지, 그 강점을 다음 삶으로 어떻게 옮길지 생각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정리해두면 마음은 덜 흔들린다.직장이 바뀌어도, 직함이 사라져도, 내가 반복해온 행위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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