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 다시 달리기 위하여
어느 날, 예기치 않게 빈 시간이 생겼다.
연락을 기다릴 사람도, 당장 해치워야 할 급한 일도 없는 완벽한 공백이다. 그런데도 마음은 먼저 분주해진다. 이 시간을 이렇게 보내도 정말 괜찮은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이 고개를 든다. 고요함 속에서 생각은 스스로 불안을 불러오고, 몸은 쉬고 싶어 하지만 마음은 자꾸만 무언가를 요구한다.
책을 펼칠까, 운동을 나갈까, 아니면 내일의 계획이라도 앞당겨 세워 볼까? 마음 편히 쉬고 싶다는 바람보다, 지금 왜 쉬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앞선다.
우리는 너무 오래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상태’에 길들여져 왔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장면을 만난다. 기록의 상승 곡선이 완만해지는 순간, 몸은 무리한 질주를 멈춘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자극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는 여유다. 역설적이게도 이 멈춤의 단계를 거쳐야만 정체기는 끝이 나고 기록은 다시 올라간다. 계속 달리는 것보다 잘 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우리의 본능은 이미 알고 있는 셈이다.
일본 현대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라 불리는 닌텐도의 게임 디자이너 미야모토 시게루는 세계적인 성공 이후 찾아온 슬럼프 시기에 삶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췄다. 그는 수영을 하고 정원을 가꾸며 특별한 목적 없이 시간을 비워 두었다. 어느 날 테라스에 앉아 개미들이 잎사귀를 옮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상상했다. ‘저 작은 개미들이 사람이 된다면 어떨까.’ 그 사소한 호기심은 훗날 게임 《피크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보였던 그 공백의 시간이 가장 독창적인 영감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 삶 또한 다르지 않다. 가족을 지키고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타인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멈춰 서는 것을 죄책감처럼 느끼게 되었다. 특히 중년이 되면 빈 시간 앞에서 마음이 더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자꾸만 남은 시간을 계산하게 되고, 여전히 나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다 보니 휴식은 어느새 '쉼'이 아니라 제대로 해내야 할 또 하나의 '일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시간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앞만 보며 달리느라 놓쳤던 내 상태를 살피고, 흐트러진 마음의 중심을 다시 잡는 회복의 시간이다. 성과를 증명할 필요도, 다음 계획을 서둘러 꺼내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저 창밖의 풍경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가만히 놓아두는 나만의 시간이다.
작가 박완서의 삶 역시 그런 틈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았다. 마흔 무렵, 전업주부로 지내던 그녀는 집안일이 끝난 밤과 새벽의 고요한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대단한 성과를 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하루의 소음이 가라앉은 뒤 오롯이 자신을 대면하는 평온한 순간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쌓인 문장들이 소설 《나목》이 되었고, 그의 삶에는 완전히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들은 삶의 여백을 성과를 위한 시간으로 서둘러 활용하려 하지 않았다. 먼저 멈추었고, 관찰했으며,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다. 다시 발걸음을 뗀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재충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 하루쯤은 아무런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해도 괜찮다. 그때는 무의미해 보였던 그 시간이 어떤 값진 결과로 이어질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