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시대를 버티는 힘, 루틴
우리는 루틴을 종종 오해한다.
루틴을 완벽하게 지켜야 하는 엄격한 스케줄이나, 의욕과 영감이 넘치는 사람들만이 유지할 수 있는 특별한 습관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루틴의 본질은 완벽함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에 가깝다. 내일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감각,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는 그 루틴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원래 젊은 시절 재즈 바를 운영하며 밤새 손님을 맞고 새벽에야 귀가하는 삶을 반복하던 시절이 있었다.그러던 중 어느 날, 야구 경기를 보던 중 문득 "소설을 써야겠다"는 충동이 스쳤고, 그 한 줄기 생각이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는다.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그의 구체적인 일과는 이렇다. 새벽 4시에 알람 없이 기상해 바로 책상에 앉고, 5~6시간 동안 정해진 분량(원고지 10매)을 집중 집필한다. 잘 써지든 그렇지 않든 이 분량을 채우는 것이 규칙이다. 오후에는 10km 달리기나 1,500m 수영 등의 격렬한 운동을 한 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여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내일의 새벽 4시를 위해 예외 없이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든다.
그는 이 일정한 반복을 ‘자신에게 거는 최면’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루틴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었다. 고독한 창작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자, 불확실성과 감정의 기복 속에서도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하루의 루틴이, 결국 그를 오늘의 무라카미 하루키로 만들어냈다.
중년인 박진영 역시 50대에도 무대 위에 선다. 그를 뒷받침하는 것은 약 20년간 유지해 온 일상의 루틴이다. 정해진 기상, 계산된 식단, 스트레칭과 발성, 고강도 운동, 일정한 수면 시간이 그것이다.
그는 "60대에도 20대보다 더 잘 춤추는 가수"를 꿈꾸지만, 그 꿈을 떠받치는 건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선택들이다. 그는 심지어 환경까지 루틴에 맞춰 정리한다. 옷 고르는 시간을 줄이려 비슷한 옷만 입고, 생각을 아껴 중요한 곳에 쓰기 위해 일상의 결정을 최소화했다.이 반복 속에서 그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만들었다. 루틴은 체력을 유지하는 방법이자, 자신을 잊지 않게 해주는 장치였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회사가 흔들릴 때, 일이 예전 같지 않을 때, 퇴근 후 아무것도 하기 싫어 소파에 깊이 파묻히고 싶을 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대단한 결심이나 어떤 원대한 계획이 아니다.
“그래도 오늘 이만큼은 한다”라는 작은 반복이다.
퇴근 후 30분 동안 글 한 단락을 쓰는 일, 새로운 분야의 강의를 한 강씩 듣는 일, 매일 같은 시각에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일, 매일 아침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시는 일처럼 아주 사소한 시작도 좋다.
루틴이 힘을 갖는 이유는 결국 일관성에 있다. 완벽하게 해내는 것보다, 약속을 지키는 경험이 반복될 때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얻게 된다. "나는 내가 정한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감각. 이 감각은 자신감이 되고, 자신감은 다시 루틴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루틴은 흐트러지는 날에도 돌아올 자리를 만들어주고,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최소한의 기준선을 잡아주며, 방향을 잃어버린 날에도 다시 리듬을 회복할 힘을 준다.
루틴은 인생을 단숨에 바꾸지 않는다. 대신, 인생이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붙잡아 주는 단단한 질서이며,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더 오래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