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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배우고, 다시 설레는 인생 2막

by 최성호

"다시 꿈꿀 수 있을까?"


일정한 나이의 문턱을 넘어서면, 우리에게는 이 평범한 질문조차 무거운 책임감과 조건들로 채워지곤 한다. 다시 배운다는 것에 대한 망설임, 그리고 이것이 정말 내 미래를 바꿔줄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함, 우리는 여전히 내일을 꿈꾸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꿈이 무모한 시도는 아닐지 끊임없이 자문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젊음 뒤에도 늘 치열한 방황은 있었다.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몰라 막막했고, 세상이 정해준 정답 근처를 맴돌며 수없이 흔들리곤 했다.


그때의 고민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고민은 ‘어떻게 계속 걸어갈 것인가’를 묻는 것에 가깝다. 고민의 문법은 달라졌을지라도,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마음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배움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의 배움이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선택이었다면, 지금의 배움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한 즐거운 권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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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보다, 몇 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의 발걸음은 더 견고하다. 나 자신에 대해 충분히 탐색해온 시간이 있기에,지금은 적어도 어디에 시간을 쓰는 것이 내 삶에 의미를 더하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이 시기의 배움은 결코 젊음을 되돌리려는 무모한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지금이기에 가능한 형태로 삶의 다음 장을 설계하는 일이다.


25년 동안 중소기업 공장에서 품질관리에 매진해온 정진수 씨는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갑작스러운 퇴직 후 단기 일용직을 전전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56세에 지역 평생학습관에서 시작한 배움은 그를 출장 반려견 훈련사라는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다. 현장을 누비며 제2의 직업을 일궈낸 그의 모습은, 배움에 있어 나이는 결코 장애가 되지 않음을 몸소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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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상징은 줄리아 차일드다. 서른일곱이라는 늦은 나이에 요리에 입문한 그녀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수년간의 인고 끝에 50세에 펴낸 첫 책은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그녀는 늦깎이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열정을 가진 대상에 끝없이 호기심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40대 후반의 끈질긴 배움이 평범한 여성을 세계적인 셰프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다."


다시 배우고,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은 나이와 상관없이 시간을 가장 가치있게 쓰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 붙잡아야 할 것은 과거의 화려한 목표나 직함이 아니라, 현재를 대하는 바로 이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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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20대 시절처럼 오로지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배우는 과정을 기꺼이 즐기며,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한 걸음 내딛던 그 순수한 '설렘'. 그 설렘이 일상으로 다시 스며드는 순간, 무채색이었던 삶은 비로소 선명한 활기로 물들기 시작한다.


인생이 단판 승부가 아니라 여러 번의 막으로 구성된 긴 연극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 느끼는 불안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선택을 앞둔 설레는 예고편에 가깝다.아직 무엇이 될지 명확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다시 배우고, 다시 고민하며, 기꺼이 움직일 준비가 되었다면 당신의 다음 장은 이미 기분 좋은 시작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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