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았던 질문들
퇴근 시간이 지나면 하루가 끝났다고 믿어 왔다.
몸은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마음은 그날의 역할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사무실 언저리에 머물러 있곤 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후 5시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더 가깝다. 회사에서의 '나'가 퇴장하고, 그제야 '진짜 나'라는 사람이 조용히 무대 위로 등장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그 시간에 문득, 이런 질문들이 고개를 든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애써 피하려 하는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유독 지치지 않는가?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 질문 앞에서 멈춰 선다. 대답을 몰라서라기보다, 질문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세대는 정해진 답과 평균의 삶을 설계하는 데 익숙해져 정작 스스로를 깊게 들여다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나를 찾는 일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많은 이들도 일상 속 작은 단서를 통해 자신의 길을 수정해 나갔다.
김신지 작가는 매일 퇴근 후 '무엇이 나를 웃게 했는가'에 집중하는 <기분 일기>를 썼다. 이를 통해 자신이 계절의 변화를 관찰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는 곧 그녀만의 고유한 콘텐츠가 되었다.
최근 서울시 50대 진로 프로그램에서 읽은 어떤이의 사례는 우리에게 더 구체적인 용기를 준다.
그는 여러 차례의 재취업 과정을 단순히 생존을 위한 투쟁이 아닌, '나 자신을 깊이 알아가는 과정'으로 정의했다.그가 강조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오랜 세월 해온 '잘하는 일'에만 머물지 말고, 본인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천직)'을 찾아 여생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잘하는 일을 하다가 좋아하는 일로 옮겨가면 삶이 '노동'에서 '놀이'가 된다"고 말한다.
그는 100세 시대에 평생 현역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와 연결된 일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배우고 깨우치는 '평생 학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는 나(Me)를 찾아 행복한 천직 여행을 떠나는 심정으로, 건강을 챙기며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한다.
우리가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다시 남과 비교하는 습관이다. 누군가는 벌써 성공했고, 누군가는 화려하게 변신했다는 소식은 나를 재촉한다. 하지만 비교는 내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타인의 잣대로 내 귀한 삶을 다시 재단하게 만들 뿐이다.
사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일에는 정답도 마감도 없다. 오늘 알게 된 나와 1년 뒤의 나는 분명 다를 것이기에, 이 작업은 단 한 번의 결론이 아니라 나와 계속 이어가는 다정한 대화에 가깝다.
퇴근 후의 시간은 그 대화를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소파에 앉아 하루를 되짚어보는 짧은 순간, 산책하며 떠오르는 생각 하나, 잠들기 전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한 문장. 오늘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지금 어떤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방향이, 적어도 내 마음을 완전히 외면한 길은 아닌지."
오후 5시 이후의 삶은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한 시간이 아니다. 이미 내 안에 있었던 '천직'의 씨앗을 하나씩 다시 발견해 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