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번 버스

정릉에서 연희동까지

by 이건희

오늘도 나는 153번 버스를 타고 153센티미터의 그녀를 만나러 갑니다. 정릉에서 연희동까지 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어느 자리에 앉든 창문으로 햇살이 비쳐 들고, 귓가에는 자잘한 소음이 넘실거립니다. 책 읽기에는 더없이 안성맞춤. 오늘따라 단편집이 술술 읽혀 기분이 좋아집니다.


북악 터널을 통과해 평창동 산자락을 따라 내려갑니다. 세검정 아래를 흘러가는 홍제천도, 옥천암에서 달아놓은 색색의 연등도 보입니다. 예쁜 이 노선이 어쩐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처럼 느껴져서, 뿌듯한 데가 있습니다. 커다란 아케이드 유진상가. 홍은동의 아파트 단지. 버스는 이제 박물관을 낀 언덕을 넘습니다.


153번 버스. 그 안에는 흥분과 여유가 함께 타고 있습니다. 주변이 온통 휙휙 지나가고 와글거리는 것들 투성이지만 그게 또 유유히 즐거움이 되기도 하니까. 한눈파는 사이 벌써 내릴 때가 다 됐네요. 띵동. 이번 정류장은 연희삼거리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연희교차로입니다. 자동문이 열리고 산뜻한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저만치서 나의 그녀가 손을 흔들며 걸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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