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게 임신한 상사 대신 시카고에서 파리로 날아간 에밀리. 이방인으로 따가운 눈총과 쌀쌀맞은 대우를 받지만, 에밀리는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일과 사랑, 그리고 우정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당당하게 쟁취해보기로 한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파리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달콤한 판타지를 선사한다.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에밀리는 마케팅 회사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직장 생활을 영위한다. SNS에 파리의 일상을 업로드할 때마다 팔로워가 늘어나 순식간에 인플루언서가 된다. 아래층에 살고 있는 잘생긴 셰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공원에서 만난 외국인과는 순순히 막역한 친구가 된다. 드라마 속 파리는 마냥 화려하고 훈훈하다.
스무 살의 배낭여행. 내가 만난 현실의 파리는 생각보다 더럽고 복잡하고 퉁명스러운 도시였다. 파리의 공중 화장실에서는 심각한 악취가 풍겼다. 관광객이 빽빽하게 앉아있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는 잡상인과 경찰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다가 예의를 갖춰 다시 주문하라고 종업원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이제는 파리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게 됐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너무 늦었다지만, 파리에서 파리를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때의 나는 겁이 많았고, 불어를 써보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와인의 맛을 알지 못했다. 많고 많은 빵과 케이크를 맛보지 않았고, 일행이 아닌 사람에게는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루브르를 찾은 날은 마침 휴관일이었고,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고 칙칙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샹젤리제를 걸었다. 추억할수록 안타까운 일이다.
드라마에는 그저 감미로운 파리만 드러나지만, 파리는 매일 다를 것이다. 같은 길도 같은 건물도 매일 다른 풍경을 보이고, 같은 사람도 매일 다른 날을 맞이할 것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파리는 내가 경험한 파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파리에 다시 가보고 싶다. 파리를 다시 걷고, 파리를 다시 먹고 싶다. 파리를 다시 느끼고 싶다.
파리를 경험한 사람에게도, 파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파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꽤 매력적이다. 그러니 환상을 적당히 덜어낸다면 훨씬 더 좋은 드라마가 될 것 같다. 새로운 시즌에서는 이미 선보인 매력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다채로운 파리를 그려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