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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함부로

넷플릭스 추천 / 한국 독립영화 〈벌새〉

by 이건희

1994년, 서울. 샛노란 베네통 가방을 메고 여중생 하나가 터벅터벅 걸어간다. 은희는 답답하기만 하다. 날이면 날마다 소리를 질러대는 아빠와 툭하면 손찌검하는 오빠, 줏대 없는 남자 친구까지 남자란 남자는 전부 다 못났다. 엄마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단짝 친구는 나를 버린다. 언제쯤 빛나는 삶이 찾아올까? 살아가려면 벌새처럼 쉴 새 없이 날갯짓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함부로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

함부로 찾아온 것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 어느 날 함부로 들이닥친 사건도, 누군가에게 함부로 대해진 경험도 그렇다. 사는 동안 행복한 일보다는 그렇지 않은 일들이 훨씬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살다 보면, 함부로 전해지는 위로가 있다. 한문 선생님 영지가 중학생 은희에게 건넨 따뜻한 마음처럼. 한 번뿐인 생이다. 어느 누구도 인생을 두 번 살지는 못한다. 함부로 사는 삶이라면 함부로 좋게 사는 쪽이 낫지 않을까.


뭐니 뭐니 해도 콘텐츠의 본질은 이야기에 있다고 믿는다. 〈벌새〉는 작지만 강했다. 이야기로 승부하는 대단한 영화들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갑갑하고 찌릿하면서도 진한 울림이 있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목을 받았다. 나 역시 올해 첫 번째 독립출판물을 만들었다. '독립'이라는 명찰에는 독자적인 힘으로 일어서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우리 모두 날개를 활짝 펴고 자유롭게 나는 날이 오기를. 고생한 나에게, 고군분투하는 창작자 동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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