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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게

넷플릭스 추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by 이건희

제과점에서 일하는 미수와 갓 소년원을 나온 현우. 둘은 1994년 10월 1일 처음 만난다. 그날은 처음으로 유열이 라디오 DJ를 맡게 된 날이었다. 상황에 현실에 치이고 또 치여서 자꾸만 어긋나는 인연. 그러나 운명의 장난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연히 마주친다.


등장인물 모두는 사연이 있어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헌책방이나 PC 통신을 비롯해 지금은 쉽게 찾을 수 없는 소재들도 부담스럽지 않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영화가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첫사랑 영화가 흔히 취하는 클리셰에 빠지지 않은 것이 좋았다. 대표적으로 〈너의 결혼식〉이 그러한데, 비슷한 방식으로 오로지 남자의 시선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여주인공의 의식이나 감정은 사라져 버린다. 다행히 이 영화에는 두 주인공이 각자의 입장을 전달하고 서로를 향해 발을 내딛는 장면이 많다.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실제 라디오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삼은 만큼, 시대별 유행가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영화 전체가 하나의 라디오로 기능한다. 굵직한 사건마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시각적으로도 색감이 무척이나 예쁜데, 스케치 효과를 더 잘 살렸더라면 수려한 화면의 장점이 커졌을 듯싶다.


과거의 상처에 끈질기게 시달리는 현우는 말한다. 소중한 순간을 뺏기기 싫어서 사진을 찍었다고. 살면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흘러가는 시간, 주어지는 기회, 곁에 있는 사람. 무엇이건 제각각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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