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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낙관주의, 현실은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기회를 만드는 법

by 한창훈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많이 듣는 말이죠? 회의실에서, 자기계발서에서, 친구를 위로할 때도 긍정은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뭔가 피곤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을 때, 시장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 "다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주문이 과연 우리를 구해줄 수 있을까요? 때로는 그 맹목적인 긍정이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가장 달콤한 독이 되기도 합니다. 진짜 위기 속에서 우리를 살리는 힘은 '잘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라, '결국에는 반드시 이긴다'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하지만 현실은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동시에 끌어안는 역설적인 태도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현실적 낙관주의(Realistic Optimism)'입니다. 이 글에서는 뜬구름 잡는 긍정론을 넘어, 가장 어두운 현실 속에서 가장 밝은 기회를 만들어내는 전략적 사고방식, 현실적 낙관주의의 작동 원리를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1. 희망은 좋은 것이지만, 때로는 가장 먼저 당신을 죽일 수 있습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


이 역설적인 진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의 무대는 베트남 전쟁 포로수용소입니다. 1965년, 미 해군 조종사였던 제임스 스톡데일 중령은 격추되어 '하노이 힐튼'이라 불리는 악명 높은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기약 없는 수감, 끔찍한 고문 속에서 그는 7년 반이라는 시간을 버텨내고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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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경영 사상가 짐 콜린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스톡데일은 주저 없이 답했습니다. "낙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대답이죠.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들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믿었죠.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부활절에는 틀림없이 나갈 거야'라고 다시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마저 좌절되면, 결국 상심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근거 없는 희망이 반복적으로 배신당하면서, 그들의 정신력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살아남았을까요? 스톡데일은 이 역설의 핵심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결국 성공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동시에, 눈앞에 닥친 가장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종 승리에 대한 믿음이라는 '낙관'과, 현재의 끔찍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현실 직시'라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를 한 손에 쥐는 것입니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이 스톡데일 패러독스의 특징을 보였다고 분석했습니다.


2. 일단은 '내 할일'에 집중합시다.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기)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또 하나의 지혜는 바로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우리는 종종 그것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곤 합니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우리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마치 전기밥솥에 쌀을 안쳐놓고 그 앞에서 "왜 이렇게 밥이 늦게 돼!"라며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처럼, 우리는 통제 불가능한 것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습니다. (밥은 밥솥이 하는 것이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경기가 언제쯤 풀릴까?" (통제 불가능)

"상사가 왜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통제 불가능)

"클라이언트의 마음이 바뀌면 어떡하지?" (통제 불가능)


이런 걱정들은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고, 정작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을 마비시킵니다. 현실적 낙관주의자들은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그들은 통제 불가능한 현실(brutal facts)은 그저 '주어진 상수'로 받아들입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그 주어진 조건 안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에 모든 힘을 집중합니다.


3. 가난한 구단이 챔피언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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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구단이 챔피언이 되는 법.

이 현실적 낙관주의가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최고의 교과서 중 하나는 영화 <머니볼>입니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빌리 빈' 단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스톡데일 패러독스의 완벽한 현대적 재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메이저리그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가난한 구단이었습니다. 뉴욕 양키스 같은 부자 구단이 쓰는 돈의 3분의 1도 안 되는 예산으로 팀을 꾸려야 했죠. 스타 선수들은 시즌이 끝나면 어김없이 돈 많은 팀으로 떠나갔습니다. 이것이 빌리 빈이 마주한 '냉혹한 현실(brutal fact)'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했을까요?


맹목적 낙관주의자: "괜찮아, 우리에겐 열정이 있으니 어떻게든 이길 수 있어!"


비관주의자: "돈이 없으니 우승은 불가능해. 적당히 하다 시즌을 끝내자."


빌리 빈은 둘 다 아니었습니다. 그는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우리는 부자 구단과 같은 게임을 해서는 이길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승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꾼다면, 이길 수 있다."그는 통제 불가능한 '자금력'을 탓하는 대신, 통제 가능한 '선수 선발 방식'에 집중했습니다. 기존 스카우터들의 직감과 편견 대신, 철저한 데이터 분석(세이버메트릭스)을 통해 시장에서 저평가된 선수들을 헐값에 영입했습니다. 출루율은 높지만 인기가 없거나, 나이가 많거나, 폼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외면받던 선수들을 모아 '승리'라는 목표에 최적화된 팀을 만든 것입니다.

물론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구단 내 스카우터들의 격렬한 반발과 언론의 조롱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철학을 밀어붙였고, 결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20연승이라는 신화를 써내며 야구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빌리 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당신이 가진 자원이 부족하다고, 환경이 불리하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바로 현실적 낙관주의자의 승리 방식입니다. 비슷한 스토리 구조를 가진 작품으로 한국의 '스토브리그', 일본의 '노사이드 게임'이 있습니다.



4.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위험한 착각 (방어적 비관주의와의 차이)


현실적 낙관주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때로는 가장 불편한 진실을 파고드는 '비관적 사고'의 힘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는 '방어적 비관주의(Defensive Pessimism)'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일부러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불안감을 느끼고, 그 불안을 원동력 삼아 철저하게 대비함으로써 결국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전략입니다. "발표 때 마이크가 꺼지면 어떡하지? 청중이 지루해하면 어떡하지?" 와 같은 걱정을 통해 발생 가능한 모든 문제점을 미리 점검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죠.

이들은 "다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위로를 불편해합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오히려 철저한 준비를 방해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연구에 따르면 방어적 비관주의자들은 전략적 낙관주의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높은 성취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적 낙관주의와 방어적 비관주의는 어떻게 다를까요? 방어적 비관주의가 '불안'을 연료로 삼아 '실패를 피하는' 데 집중한다면, 현실적 낙관주의는 '희망'을 나침반 삼아 '성공을 만들어가는' 데 더 무게를 둡니다.

중요한 공통점은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믿음, 즉 '비현실적 낙관주의(unrealistic optimism)'는 이 두 가지 전략 모두에서 가장 경계하는 대상입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고,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하여 결국 실패로 이끌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유형이든 괜찮습니다. 핵심은 당신의 '낙관'이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긍정이 행동과 준비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현실 도피를 위한 자기 위안에 머물고 있습니까?



희망을 품되, 현실을 무기로 삼으십시오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리더와 개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아마도 '회복탄력성(Resilience)'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탄력성의 심장에는 바로 '현실적 낙관주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보여주듯, 가장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규율과 결국에는 승리하리라는 믿음을 결합할 때, 우리는 어떤 위기에도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갖게 됩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통제 가능한 것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변화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 낙관주의는 마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희망과 현실, 믿음과 분석이라는 양 극단을 오가며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치열한 지적, 정신적 훈련입니다. 당신을 둘러싼 현실이 아무리 어둡더라도, 그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십시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당신이 켤 수 있는 가장 작은 촛불, 즉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행동을 찾아내 불을 붙이십시오. 그 작은 불꽃들이 모여 결국 당신을 승리의 빛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성찰을 위한 질문 (For Your Reflection)


나의 스톡데일 패러독스: 당신이 현재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을 떠올려보세요. 그 상황에서 당신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가장 냉혹한 현실(brutal fact)'은 무엇입니까? 동시에, 그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궁극적인 성공에 대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나의 머니볼 전략: 당신의 현재 상황을 영화 <머니볼>의 빌리 빈 단장에게 비유해봅시다. 당신이 가진 자원(시간, 돈, 인력 등)의 한계라는 '현실'을 인정할 때,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당신이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데이터 기반의 저평가된 선수(전략)'는 무엇일 수 있을까요?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기: 오늘 하루,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갔던 '통제 불가능한 걱정'들은 무엇이었나요? 내일은 그 걱정에 쏟을 에너지의 절반을, 당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작지만 중요한 행동(예: 10분 일찍 출근해 하루 계획 세우기, 동료에게 먼저 다가가 칭찬 한마디 건네기 등)에 투자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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