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다운로드된 세계관을 그냥 유지만 하는 사람들
"인생은 마라톤이다", "시간은 돈이다", "사랑은 전쟁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속담과 격언, 비유를 듣고 사용합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 말들이 사실은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설계도'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우리가 무엇을 믿고, 세상을 어떻게 비유하는가는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생각, 감정, 행동을 조종하는 강력한 운영체제, 즉 '신념(Belief)'의 다른 이름입니다. 대부분의 신념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사회로부터 '수동태'로 주입됩니다. 좋은 신념을 다운로드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신이 가진 신념의 뿌리를 찾아내고, 그 신념이 어떤 은유의 옷을 입고 당신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들여다 보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 낡은 설계도를 업데이트하여, 원하는 삶을 창조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보세요.
"남한테 욕먹을 짓 하지 마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들, 기억나시나요? 이런 말들은 단순한 잔소리로 시작하지만 장기적으로 반복되면서 개인의 삶의 규칙, 세계관을 만드는 강력한 '신념'의 씨앗이 됩니다.
신념이란 '굳게 믿는 생각'을 의미하며,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집니다.
문제는 우리가 '내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 신념들이, 사실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서 물려받은 '중고품'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나는 원래 이것밖에 안돼"처럼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제한적 신념(Limiting Belief)'도 많습니다. 이런 신념은 우리 뇌 속에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만들어, 스스로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감옥이 됩니다.
와튼 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그의 저서 『오리지널스』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고객 상담 직원 중 업무 성과가 높은 사람들의 공통점을 분석했더니, 그들이 사용하는 '웹 브라우저'가 달랐다는 겁니다. 성과가 낮은 직원들은 컴퓨터에 기본으로 설치된 인터넷 익스플로러나 사파리를 그대로 사용했지만, 성과가 높은 직원들은 크롬이나 파이어폭스처럼 자신이 직접 다른 브라우저를 찾아 설치해서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더 나은 대안이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행동하는 태도. 이 작은 차이가 업무 방식과 성과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신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와 사회가 설치해준 '기본 브라우저'로 평생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생을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한 번쯤 멈춰 서서 묻습니다. 당신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가진 이 신념, 이 운영체제는 과연 최선일까? 더 나은 버전으로 업데이트할 수는 없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가장 쉽고 강력한 방법은 바로 '은유(Metaphor)'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인생은 OOO과 같다"는 문장의 빈칸에 당신은 어떤 단어를 채우시겠습니까? 그 단어가 바로 당신의 핵심 신념을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한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두 명의 참가자가 똑같이 "인생은 마라톤이다"라고 답했습니다. 먼저 영업팀 부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마라톤은 날씨 좋은 날 많은 사람과 함께 뛰는 축제 같잖아요. 힘들만하면 물도 주고, 완주하면 성취감도 있고, 함께한 사람들과 좋은 추억도 쌓이고...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대답을 했던 다른 한 분, 임원분의 표정은 살짝 어두웠습니다. 그는 힘든 개인사를 겪으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분이었습니다. 그에게 마라톤은 이런 의미였습니다. "마라톤은 결국 혼자 뛰는 고독한 싸움입니다. 중간에 멈추면 끝이고, 무조건 남들보다 앞서가야만 합니다."
같은 '마라톤'이라는 은유였지만, 두 사람의 세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 명에게 인생은 '즐거운 축제'였고, 다른 한 명에게는 '고독한 전쟁'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은유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과 감정의 질이 180도 달라집니다. 사람은 자신의 신념, 즉 자신이 가진 은유의 틀에 세상을 끼워 맞추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일은 무엇인가요? '전쟁터'인가요, '놀이터'인가요, 아니면 '수행의 과정'인가요? 당신의 결혼 생활은 '안식처'인가요, '감옥'인가요? 우리는 현실에 은유를 갖다 붙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은유가 다시 당신의 현실을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그림으로 말이죠.
강력한 신념은 때로 우리를 낡은 틀에 가두지만, 때로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역사를 바꾼 인물들의 삶은, 하나의 강력한 신념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로 가득합니다.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여기에 있다" -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는 단순히 컴퓨터를 파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우리는 지금 우주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강렬한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잡스와 함께 일했던 한 직원은 "잡스와 이야기하면 마음이 출렁이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념이 가진 전염성입니다.
"자동차는 부자들의 장난감이 아니다" - 헨리 포드
헨리 포드가 살던 시대에 자동차는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포드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습니다. 이 신념은 '모델 T'라는 혁신적인 제품과 컨베이어 벨트라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낳았습니다. 그는 심지어 직원들에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고임금을 지급했는데, 이는 직원들이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신념은 단지 자동차 회사를 성공시킨 것을 넘어, '마이카 시대'를 열고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을 탄생시키며 20세기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십시오" - 헬렌 켈러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은 헬렌 켈러. 그녀의 삶 자체가 신념의 기적을 증명합니다. 그녀와 그녀의 스승 앤 설리번은 '장애가 있더라도 세상과 소통하고 배울 수 있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헬렌 켈러는 자신의 신념대로 세상을 바꾸었고, 전 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과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신념을 따를 필요도, 꼭 존경심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나의 신념은 어떠한지를 들여다보고, 좋은 신념이 있다면 보고, 읽고, 배워서 선택적으로 내 것에 반영하면 됩니다. 책을 읽고,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을 읽어보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신념과 은유는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바뀌지 않는 견고한 성과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성의 주인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언제든 낡은 성벽을 허물고 새로운 성을 지을 힘, 즉 새로운 신념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낡은 신념을 업데이트할 수 있을까요?
나의 신념과 은유 찾아내기: 먼저 조용한 시간을 갖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세요. "나는 돈에 대해, 성공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무엇을 믿고 있는가?", "어릴 적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무엇인가?", "나의 인생(일, 사랑)은 무엇과 같은가?" 이것들을 솔직하게 종이에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시작됩니다.
유효기간 점검하기: 적어놓은 신념과 은유를 보며 다시 질문합니다. "이 믿음이 지금의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가?", "이 은유는 나에게 힘을 주는가, 아니면 힘을 빼앗아 가는가?" 과거에는 나를 지켜주었던 신념이, 지금은 나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신념과 은유 '선택'하기: 만약 기존의 신념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면, 이제 새로운 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할 차례입니다. '인생은 고독한 싸움'이라는 은유 대신 '인생은 함께 즐기는 축제'라는 은유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돈은 더러운 것'이라는 신념 대신 '돈은 선한 영향력을 위한 도구'라는 신념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억지로 긍정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차피 세상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곳이라면, 이왕이면 나에게 힘이 되고 나를 성장시키는 '해석'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뜻입니다. 낡은 신념에 집착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세계관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그 렌즈의 색깔과 모양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신념'과 '은유'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설계도는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기회를 잡으며,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 삶의 모든 순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설계도가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물려받은 설계도를 그대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든 낡은 청사진을 점검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설계도를 그려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창조자입니다.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 당신이 품고 있는 믿음,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비유를 점검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줄 새로운 신념과 은유를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사용하십시오. 그 작은 선택 하나가 당신의 세계를 바꾸는 가장 위대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나의 핵심 은유 찾기: 당신의 '일'을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에 비유한다면 무엇입니까? (예: "나의 일은 (시시포스의 바위)와 같다", "나의 일은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다") 그 은유는 당신에게 어떤 감정과 행동을 불러일으키나요?
신념의 뿌리 탐색하기: 당신이 가진 신념 중, "이건 부모님(혹은 사회)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나요? 그 신념은 당신의 삶에 어떤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까?
새로운 은유 설계하기: 당신이 현재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을 하나의 은유로 표현해 보세요. (예: "이 문제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이제, 그 상황을 전혀 다른, 조금 더 희망적인 은유로 바꿔본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예: "이 문제는 (숨겨진 보물 지도를 푸는 과정)이다") 은유를 바꾸는 것만으로 당신의 감정과 문제 해결 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상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