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하나에 세계 전부가 들어 있다
아프리카의 실제 크기를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중국, 미국, 인도, 유럽, 일본을 전부 아프리카 안에 넣어도 자리가 남습니다. 면적 3,030만 km². 한반도의 약 140배입니다. 그런데 교실에 걸린 세계지도에서 아프리카는 그린란드와 비슷해 보입니다. 실제로는 14배 큽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이 만든 착시입니다. 1편에서 다뤘던 그 지도. 북쪽을 크게, 적도를 작게 그리는 지도가 아프리카의 존재감까지 줄여버렸습니다.
아프리카에는 54개 나라가 있습니다. 유럽(약 44개국)보다 많습니다. 언어는 2,000개가 넘습니다. 세계 전체 언어의 약 3분의 1이 이 대륙에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하나의 나라처럼 말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라는 문장은, "아시아에서는..."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거칠 수 있습니다.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과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IT 개발자와 케냐 마사이족과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와인 양조가를 하나의 문장으로 묶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 다양성의 원인은 땅에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지형이 워낙 다채로워서, 한 대륙 안에 사막, 열대우림, 초원, 고원, 빙하(킬리만자로 정상)까지 전부 있습니다. 기후가 다르면 생활이 다르고, 생활이 다르면 문화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면 언어가 달라집니다.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사하라 사막(Sahara Desert)입니다. 면적 약 920만 km². 사막 하나가 미국 본토와 맞먹습니다. 1편에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부 모래라고 상상하고, 그걸 열한 번 반복하라"고 했습니다. 그게 사하라입니다.
이 사막이 아프리카를 남북으로 완전히 쪼갭니다. 사하라 이북(마그레브, Maghreb — 아랍어로 '해가 지는 곳')은 지중해 세계입니다. 유럽과 다투고 교류하며 성장했고, 지금도 유명한 휴양지가 많죠. 원주민들이 뛰어 다니는 이미지의 아프리카와는 아예 다른 곳입니다. 아랍어를 쓰고 이슬람을 믿습니다.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문화적으로는 중동과 더 가깝습니다.
사하라 이남(Sub-Saharan Africa)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수천 개의 민족, 수천 개의 언어, 다양한 종교가 공존합니다. 이 두 세계는 사하라라는 모래 바다에 의해 수천 년간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교류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낙타 카라반이 소금과 금을 싣고 사막을 횡단했습니다. 하지만 지중해 세계처럼 빈번한 교류는 불가능했습니다. 배로 건너는 바다보다 낙타로 건너는 사막이 더 어려웠습니다.
한반도로 치면 사하라는 휴전선의 확대판입니다. 다만 폭이 수천 km인 휴전선. 이 선 위와 아래가 다른 세계를 이뤘습니다.
사하라 바로 아래에 사헬(Sahel) 지대가 있습니다. 아랍어로 '해안'이라는 뜻입니다. 사막의 해안. 사막에서 초원으로 넘어가는 전이 지대입니다. 말리, 니제르, 차드, 수단, 부르키나파소 등이 이 띠 위에 걸쳐 있습니다.
사헬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입니다. 사하라가 매년 남쪽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초원이 사막이 되고 있습니다. 농사짓던 땅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동합니다. 이 이동이 자원 경쟁을 만들고, 자원 경쟁이 분쟁을 만듭니다. 사헬의 불안정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후가 바꾸는 지정학의 현재진행형입니다.
세계 최장의 강입니다. 길이 약 6,650km. 서울에서 출발하면 지구 반대편 브라질까지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이 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릅니다. 지도를 보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대부분의 큰 강이 산에서 바다로, 대체로 내려가는 느낌인데, 나일은 적도 근처 빅토리아 호(Lake Victoria)에서 발원해 사하라를 관통하며 지중해까지 올라갑니다.
사하라 한가운데를 강 하나가 관통합니다. 이 강이 없으면 이집트가 없습니다. 헤로도토스(Herodotus)가 "이집트는 나일의 선물"이라 말한 건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지리적 사실입니다. 나일강의 연례 범람이 비옥한 흙을 실어다 주었고, 사막 한가운데 녹색 띠를 만들었습니다. 이집트 인구의 대부분은 지금도 나일강 유역에 몰려 삽니다. 위성 사진으로 보면 선명합니다. 갈색 사막 한가운데를 초록색 실이 관통하는 모습. 그 실 위에 1억 명이 삽니다.
2편에서 다뤘던 지구대(Rift Valley)가 여기 있습니다. 동아프리카 지구대(Great Rift Valley). 에티오피아에서 모잠비크까지 약 6,000km에 걸쳐 대륙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년 수 mm씩.
수백만 년 뒤에는 동아프리카가 떨어져 나가 새로운 대륙이 될 겁니다. 마다가스카르가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간 것처럼.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면 대륙은 고정된 게 아닙니다.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움직입니다.
이 지구대가 인류 역사에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화석이 여기서 발견됩니다. 에티오피아의 '루시(Lucy)',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Olduvai Gorge). 약 300만 년 전의 인류 조상 뼈가 이 골짜기에서 나왔습니다. 땅이 갈라지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환경 — 숲이 사라지고 초원이 나타난 것 — 이 직립보행을 유도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걸어야 했던 이유가 땅의 변화에 있었을 수 있습니다.
서울로 치면 지구대는 한강이 점점 넓어져서 결국 서울을 두 개로 쪼개는 과정이라고 상상하면 됩니다. 다만 그 과정이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라 체감이 안 될 뿐입니다.
아프리카의 지리를 관통하는 세 개의 대조가 있습니다.
건조 vs 습윤. 사하라와 콩고 분지는 극단적 대비입니다. 사하라는 연 강수량 25mm 이하. 콩고 분지는 세계 두 번째 열대우림으로 비가 쏟아집니다. 같은 대륙에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과 가장 습한 곳 중 하나가 공존합니다.
고원 vs 저지대. 에티오피아 고원은 '아프리카의 지붕'이라 불립니다. 평균 해발 2,000m 이상. 이 높이가 에티오피아를 독특하게 만들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유럽 식민지가 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이탈리아가 두 번 시도했지만 한 번은 패배, 한 번은 단기 점령에 그쳤습니다.) 고원의 높이가 곧 방어력이었습니다. 6편에서 데칸 고원이 인도 남부를 지킨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반면 서아프리카 해안 저지대는 열대성 질병의 온상이었습니다. 말라리아가 유럽인의 진출을 수백 년간 막았습니다. '백인의 무덤(White Man's Grave)'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죠. 유럽이 아프리카 내륙을 본격적으로 식민 지배한 건 19세기 후반, 키니네(Quinine, 말라리아 치료제)가 보급된 이후입니다. 약 하나가 대륙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해안선의 빈곤. 3편에서 유럽의 들쭉날쭉한 해안선이 항구를 만들고 무역을 촉진했다고 했습니다. 아프리카는 정반대입니다. 대륙이 둥글고 해안선이 매끈합니다. 면적은 유럽의 세 배인데 해안선 길이는 비슷합니다. 천연 항구가 적습니다. 항구가 적으면 해상 무역이 어렵고, 해상 무역이 어려우면 외부 세계와의 교류가 제한됩니다. 해안선의 모양 하나가 대륙의 역사적 궤적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콩고 분지(Congo Basin) — 숲이 만든 고립. 세계 두 번째 열대우림입니다. (1위는 아마존.) 콩고강(Congo River)이 이 분지를 관통합니다. 콩고강은 유량 기준으로 세계 2위입니다. 이 거대한 숲과 강이 중앙아프리카를 외부와 단절시켰습니다. 숲이 너무 빽빽해서 대규모 이동이 어렵고, 강에는 폭포와 급류가 많아서 배로 내륙까지 들어가기 힘듭니다. 이 고립이 중앙아프리카 역사가 외부에 덜 알려진 이유 중 하나입니다.
희망봉(Cape of Good Hope) vs 아굴라스 곶(Cape Agulhas). 아프리카 최남단이 희망봉이라고 알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실제 최남단은 동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아굴라스 곶입니다. 희망봉이 더 유명해진 건 항해사들이 이 곶을 돌아야 인도양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s)가 1488년에 이 곶을 돌았습니다. 원래는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라 불렀는데, 포르투갈 왕이 '희망의 곶'으로 바꿨습니다. 인도로 가는 바닷길이 열렸으니 희망이라 부를 만했습니다. 마케팅의 승리입니다. (5편에서 그린란드를 '녹색 땅'이라 부른 바이킹의 후예가 여기도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 떨어져 나간 세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입니다. 한반도의 약 2.7배. 약 8,8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이 긴 분리 기간이 독자적 생태계를 만들었습니다. 여우원숭이(Lemur)는 지구에서 마다가스카르에만 삽니다. 동식물의 약 80%가 이 섬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종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주민의 기원입니다. 아프리카 바로 옆에 있는데, 초기 정착민의 상당수는 동남아시아(현재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일대)에서 건너왔습니다. 인도양을 가로질러 6,000km를 항해한 겁니다. 바다가 가르기도 하지만, 바다를 건너는 사람은 항상 있었습니다.
직선 국경의 비극, 아프리카 편. 4편에서 중동의 직선 국경을 다뤘습니다. 아프리카는 더 심합니다. 1884~1885년 베를린 회의(Berlin Conference). 유럽 열강이 베를린에 모여 아프리카를 나눠 가졌습니다. 아프리카인은 한 명도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지도 위에 자를 대고 국경을 그었습니다. 같은 민족이 두세 나라로 쪼개졌고, 적대적인 집단이 한 나라 안에 묶였습니다. 아프리카 국경의 약 44%가 위도선이나 경도선을 따른 직선입니다. 자연 지형도, 민족 분포도, 언어 경계도 무시한 선입니다. 중동에서 자가 바빴다고 했는데, 아프리카에서는 자가 과로했습니다.
이 인위적 국경이 독립 이후 수십 년간의 내전과 민족 갈등의 씨앗이 됐습니다. 르완다 내전, 콩고 분쟁,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전쟁. 전부 식민지 시대에 그어진 선의 후유증입니다. 땅의 논리를 무시한 국경은 비용을 치릅니다. 그 비용을 치르는 건 선을 그은 사람이 아니라 선 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프리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가장 큰 대륙이 가장 작게 그려졌고, 가장 오래된 역사가 가장 늦게 알려졌습니다. 인류가 처음 두 발로 선 곳이 아프리카입니다.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이집트)가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역사는 '유럽이 도착한 이후'부터만 다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르카토르 지도가 크기를 줄였고, 식민 역사가 서사를 독점했습니다. 지도를 다시 그리면, 역사도 다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