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 백년 여행기》전시中
정연두 작가의 백년 여행기 전시를 다녀왔다.
백년 여행기는 멕시코에서 태평양을 건너와 제주도에 뿌리를 내렸다고 알려진, 선인장의 일종인 백년초의 설화를 인형극 처럼 풀어낸 동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되는 20세기가 시작되던 1900년대의 멕시코로 이주한 조선인 디아스포라에 관한 전시로 이자경,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 의 기록을 참고 한 듯 하다.
백년 여행기는 메인 홀의 설치물 <상상곡>과 5전시실의 <백년 여행기-프롤로그>를 시작으로 <백년 여행기>, <세대 초상>, <날의 벽>의 5개 전시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메인 전시격인 <백년 여행기> 부분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MMCA 현대 자동차 전시들이 늘 그러하듯, 거대한 스케일의 작업들로 공간이 채워진다. 전시장의 넓고 높은 공간과 어우러진 거대한 작품의 스케일은 거대한 건축물 안에 들어선 그것처럼 일단 감상에 대단함 이라는 느낌을 기본으로 깔아준다.
거대한 스크린 사이의 높은 커튼 틈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선인장 조형물들에 둘러쌓인 빈백 의자들 앞으로 세개의 화면들을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비스듬히 커다란 스크린이 자리하고 있다.
12시가 안된 시간이어서 였는지, 여유로운 전시장 앞줄에 누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요즘 유행하는 영상 형태의 전시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전시는 감상과 감동에 젖어 처음 부터 끝까지 영상을 관람했고 영상을 본 후 다시 한번 나머지 전시물들을 돌아 보게 되었다.
내가 영상에 몰입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디아스포라 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이었을 것이다. 특히 1900년대 전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나의 최근의 관심사와 맞물리며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라는 서사가 내 가슴과 머릿속을 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묘하게도 내게 <백년 여행기>는 현대 미술 작품을 관람했다기 보다는, 20세기 초 변사가 읊어주는 무성 영화관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무성 영화의 기억은 어릴적 영화나 TV에서 막연하게 경험한 것이 전부이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영화는 40여분 정도 였던 것 같다.
스크린에서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위해 설계된 영상이라기 보다는 아마추어가 카메라 하나 들고 다니면서 찍은 듯한 한국과 멕시코의 여러 장소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뭔가 투박함이 왠지 <총천연색>이라는 단어가 어울릴듯한 그런 영상이다.
1905년 4월 4일 영국 상선인 일포드 호에 몸을 싣고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의 농장을 향하는 한인 1033명의 이야기는 무성 영화 화면 아래의 세개 화면에 자리한 한국의 판소리, 멕시코의 마리아치, 그리고 일본의 기다유 라는 전통 음악 공연자들의 노래 소리로 들려진다.
그들은 각각 순서에 따라 변사가 되어 한인 멕시코 이민사의 서사를 때로는 설명적으로 때로는 욕지거리를 들려주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전통 음악들이 가지고 있는 묘한 끈적한 슬픔이 가슴을 파고 든다.
총천연색의 현재가 담긴 영상과 세 나라 변사들의 노래소리에 실린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1905년의 시간 속으로 돌아간 듯 했다. 그렇게 나는 온통 21세기의 그것들과 사람으로 채워진 21세기 현재의 공간에서 1900년대 초 무성영화관에서 벌어지는 100년전의 이야기 속으로 타임슬립해 있었다.
전통 노래로 서사의 다양한 감상을 읊어주는 화면속의 세 나라의 전통 음악가들은 각자 순서에 따라 노래를 부른다. 영상들은 모두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촬영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노래가 끝나면, 다음 노래까지 기다리는 동안 들리지 않는 잡담들을 하며 마치 한 곳에서 모두 함께 같이 공연을 하듯 영상이 이어졌다.
마치 세 나라의 변사들이 한 곳에 있는 것 같은 이것은 묘한 현실감을 주었다. 마치 그들이 영상이 아닌 지금 이곳에서 있는 것처럼 변사가 있는 무성 영화관의 느낌을 완성했다고 할까?
디아스포라, 그리고 한인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있다고 했지만, 멕시코 이민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백년 여행기>의 오래된 서사 형식의 마치 누군가의 옛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따라 가고 있었고, 그 서사가 마음을 깊게 울리고 있었다.
1904년 황성신문에 농부모집광고가 실렸다. 멕시코 이주 브로커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노동자 모집을 실패하고 대한제국으로 신문 광고를 낸 것이라고 한다. 당시 조선 관료의 부정 부패로 사람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조선 말의 이야기가 일본 전통 가다유의 노래 소리로 읊어 지는 장면에서는 참 복잡한 감정이었다.
힘든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1033명의 조선인들은 이민 사기극에 속아 노예로 팔려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며 40도가 넘는 뜨거운 농장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갔다. 에네켄 - 애니깽이라고 어릴적 들었던 그 이름이 바로 그들이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주변에 있었는데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오늘 오래된 무성 영화를 보고 왔다. 변사들의 척척한 노래소리 속 이야기의 멕시코 이주 한국인들을 따라 1905년 조선 땅에서 제물포 항구로 40여일에 걸친 멕시코 농장까지의 여정과 거칠었을 그들이 살아온 100년의 시간을 듣고 보았다. 다른 시간이 쌓여 다른 모습의 한인 후손들의 모습.
문득 이야기의 시작이 된 백년초가 궁금해졌다.
검색을 해 보니, 신비의 식물로 백가지 병을 고친다는 이야기와 백년초 제품들에 관한 검색으로 가득하다.
백년초 이야기를 찾아 내려면 조금 더 시간을 써야 할 것 같다.
아니다, 백년초 보다는 1900년대 전후의 일들이 더 많이 궁금하다.
내 개인 취향 탓에 감동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연두 작가의 (무성 영화) <백년 여행기>는 볼만하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서사가 궁금하다면 MMCA 서울관의 5관 ^^의 무성 영화관에 한번 들러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