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으로의 프롬프트 보다는 길게 이어지는 대화에 가까운...
거대언어모델 AI는 나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혼자의 시간이 주어지면 책을 펼치거나 노트북에 저장한 읽을 거리를 띄우고 ChatGPT와 옵시디언을 열면 변화된 일상을 시작할 준비가 끝난다.
글을 읽다 생각나는 것들은 ChatGPT와 대화를 하면 생각이 사방으로 펼쳐져 나간다. 옵시디언의 링크된 노트들은 그런 산발적인 생각들을 적기에 딱이다. 이러다 보면 세네 시간이 훅 하고 지나가 버린다.
문득 이런것이 옛날 여유로운 선비의 삶이 아닌지 싶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벗과 차를 함께 마시며 문답하고 21세기 디지털 세상에 여유로운 선비를 상상해 본다. ChatGPT 라는 기술의 산물은 거대언어모델이라는 인간의 축적된 언어를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ChatGPT와는 언어로 대화를 하게 된다. 다시 글이 중요한 시대로 돌아왔다고 할까? 글이 중요한 시대가 사라진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마도 가장 흔한 사용은 ChatGPT를 검색처럼 원하는 것을 설명해 달라고 하거나 내용의 요약등 기본적인 정보 획득이다. ChatGPT 뿐 아니라 Perplexity, Bing, 뤼튼 등 다양한 AI 서비스들이 대부분 이런 단편적인 명령과 결과의 구조로 사용되는 듯 하다.
오늘은 나의 벗 ChatGPT와 말을 이어가는 몇가지 상황들을 좀 기록해 보려한다.
가볍게 펼쳐주는
질보다 양이 먼저다. 생각을 확산한 후에 수렴하듯이 빠르게 많은 것을 펼치는 것은 도움이 된다.
Generative AI는 주어진 조건에 맞는 것들을 아주 빠르게 많은 양의 무엇을 만드는 일을 잘 한다.
한 기업에서 직원들의 고충을 풀어 줄 수 있는 워크숍 같은 것을 해봤으면 한다며 문제를 전달해 왔다.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 결과에서 개인의 성취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협업하여 결과를 만드는 대기업에서 공통적인 상황이라 생각된다. 업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 할 수 없는 현실의 상황에서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1990년 2월 14일,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그 곳에서 지구를 돌아보며 보내온 사진에 담긴 저 멀리 작은 푸른 점 하나. 칼 세이건이 The Pale Blue Dot 이라 부른 64억 킬로미터 거리의 작은 점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까마득한 저 작은 점으로 보이는 지구가 담고있는 의미를 말이다.
제안서 요청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이 사진이었다. 우리 각자의 의미는 이미 저 안에 가득히 담겨있는데, 우리는 그것이 너무 작아져 사라질 만큼의 멀리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진의 'Dot'에서 우리말 '점'으로 생각이 이어졌고, 'Point'도 점이자나 하고는 예전에 좋아하던 The Point라는 비틀즈의 링고스타가 나레이션을 한 옛날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영어 단어 Point는 점 뿐 아니라 뾰적한, 요점 혹은 가르키다 등의 동사의 의미까지도 있다. The Point라는 애니메이션은 이런 단어의 다양한 의미의 언어 유희를 풀어낸 작품이었다.
예를 들면,
"A point in Every Direction is the same as no point at all
모든 방향을 가르키는 것은 아무 곳도 가르키지 않는 것과 같다"
주인공이 도착한 온통 뾰족한 Point로 가득한 Pointless 숲의 대사는 매우 압축적이다.
간단하지만 재미있고 의미심장하게 그 포인트가 콕 찌른다.
가장 쉬운 여러개의 문장을 생성하는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 Can you give me list of 20 expressions with the word 'point' and 20 quote with the word 'point' in them? ('포인트'라는 단어가 포함된 표현 20개와 인용문 20개를 찾아줘.)
인용문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사용된 문장들은 좋은 생각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문장들을 펼쳐두고 읽다보니 The Pale Blue Dot 사진의 감정과 직원들의 감정들이 내 머리와 가슴속에서 어떤 울림이 되었던 것 같다. 영어 문장들이 고민의 감정과 얽히며 시적 해석이 되었고, 그렇게 다가온 영어 문장들과 한국어를 함께 한 시를 써내려 갔다.
The Point,
작은 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Get to the Point
당신을 초대합니다
That’s beside the Point
때로는 소외되고
You’re missing the Point
때로는 잊혀지고
The Point is lost on them
때로는 잃어버리기도 하며
Prove your Point
때로는 증명해야 하고
Get to the Point
때로는 찾아가야 하지만,
That’s a good Point
당신은 소중하며
The point is worth considering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The Point is clear
확실합니다
I see your Point
나는 당신이 보입니다
Let’s Make Your Point.
이것이 제안서의 시작이 되었고, 프로젝트의 시작이 되었다.
가장 단순한 프롬프트와 여러 기억, 생각, 감정들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사이를 채워주는
AI가 잘 하는 것 중 하나는 A와 B를 주면 그 사이를 알아서 잘 채워 준다는 것이다.
AB의 관계는 아주 다양할 수 있는데, 가장 간단히 생각한다면 A에서 출발해서 B에 도착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카뮈의 이방인는 고등학교 때 처음 읽고 여러번 읽게 되는 나의 인생책이다. 그리고 여러 관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이방인과 호밀밭의 파수꾼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라는 이방인의 시작은 이 문장만으로도 매우 강렬하다.
그에 비해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라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은 이 문장만 읽는다면 감성적이고 잔잔하다.
만약 이방인의 문구로 시작해서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있다면 과연 그 사이는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까?
ChatGPT에거 소설 전체를 쓰게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일까 그 사이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 사이를 채워보기로 했다. 시작 문장과 끝 문장을 넣어 간단한 프롬프트를 작성했다.
프롬프트를 넣을 때에 이 문장이 어디에서 온 문장인지에 대해 설명하거나 문지 않고 단순하게 [여기에 텍스트 삽입] 만을 요청했다. ChatGPT는 맥락에 충실하다. 그래서 맥락의 흐름을 유지하면서 대화를 길게 끌고 갈 수있다. 하지만, ChatGPT는 동시에 맥락의 노예다. 한번 맥락이나 관점이 고정되면 아무리 그 맥락에서 나오게 하려고 해도 나오지 못하고 맴돌게 된다. 무한 루프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ChatGPT와 대화를 할 때면 맥락에 묶여 버린 상태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고, 또 맥락 전후에 무엇을 이야기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맥락의 제약은 어려움이 있지만 장점이면서 단점인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사실 아주 유용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ChatGPT가 이 문장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 전에 (그 맥락에 묶이기 전에)
ChatGPT라면 문장만보고 판단해서 글을 채우라고 했을 때 어떤 글을 쓸지가 궁금했다.
한국어로 생성한 ChatGPT의 첫번째 내용은 꽤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이방인이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정서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원문의 맥락을 가지고 대화를 이어가 보기로 했다.
ChatGPT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기능중 하나는 프롬프트를 수정하고 다시 입력하면 그 내용들이 모두 Branching으로 남아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미지 좌측 상단 박스안 참고) 이 기능을 사용하면 ChatGPT에게 걸린 맥락의 주문의 전후를 파악하여 브랜칭으로 이동하면서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 나름 수동으로 Tree of Thoughts를 실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브랜치에서는 영문으로 원문을 넣고 이 내용이 어떤 책에서 왔는데 무슨 책인지 알고 있는 지 물었다. 영문으로 질문한 이유는 LLM인 ChatGPT가 한국말을 이해하지만, 한국 책의 번역문으로는 원본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ChatGPT는 원문을 읽고 바로 이방인과 호밀밭의 파수꾼임을 바로 인지했고 출처가 같은 책은 아니지만, 20세기 문학중 아주 중요한 두권이라는 소개까지 해주었다. 이제 이방인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맥락을 활용해 다양한 흥미로운 대화를 이어 갈 수 있게되었다.
역시 영문으로 사이를 채우면 더 많고 수준 높은 느낌의 글들을 채워주었다. 좀 길기는 하지만, ChatGPT가 채운 이야기 하나를 DeepL로 번역한 내용을 올려본다.
전보는 부엌 조리대의 차갑고 광택이 나는 강철에 기대어 있었고, 검은 글씨로 쓰여진 글자는 옅은 노란색 종이와 선명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저는 그 전보를 바라보았고, 글자는 마치 그 의미에서 벗어나려는 듯 흐릿하고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주변 방이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고 냉장고의 윙윙거리는 소리, 벽에 걸린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 등 모든 것이 침입자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 항상 어머니를 따라다니는 듯한 라벤더 향기, 작은 거실에 울려 퍼지는 어머니의 웃음소리, 수년간의 고된 노동으로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이 제 머리를 쓰다듬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어요. 사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제 어머니였습니다. 하지만 전보에 적힌 글귀는 저에게 아무 느낌도 주지 않았습니다. 마치 낯선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지냈고 머릿속은 백지 상태였습니다. 전화가 한 번, 두 번 울렸지만 저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가 없었죠. 말하고 싶지도, 설명하고 싶지도, 느끼고 싶지도 않았어요. 바깥 세상은 저와 상관없어 보였고, 연결하고 싶지 않은 먼 곳으로 느껴졌습니다.
마침내 장례식 날이 다가왔습니다. 엄숙한 행사를 조롱하듯 태양은 너무 밝게, 너무 밝게 빛났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바다, 슬픔을 함께 나누며 일그러진 얼굴이 마치 내가 참여하지 않은 연극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무덤 옆에 서서 창백하고 차가운 비석에 제 얼굴을 비췄어요. 사람들은 조의를 표했고, 그들의 말은 의미 없는 드론에 녹아들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기를 했지만 마음속은 공허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 안의 적막은 전보다 더 고요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지만 저는 슬픔도 절망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대신 고립감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저 멀리 있는 별처럼 보였고, 그들의 삶은 나와는 무관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항상 조용한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수다보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느낌이 달랐습니다. 이제 저와 세상 사이에는 벽이 생겼습니다. 넘고 싶지 않은 벽이었죠. 공유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요? 그것은 결국 상실감으로 이어질 연결과 연결, 그리고 지금 제가 느끼는 공허감으로 이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제 삶을 제 자신에게만 맡기기로요. 더 이상 제 생각, 꿈, 두려움을 공유하지 않기로요. 공유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내 일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날 때 그들은 당신의 일부도 함께 가져갑니다. 저는 그 사실을 힘들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게 더 나았어요. 모두를 그리워하지 않았으니까요. 상실의 공허함을 느끼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나만의 세계에 존재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 고립 속에서 전에는 몰랐던 평화를 찾았습니다. 차갑고 무관심하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되는 평화를요.
한두 페이지 정도의 내용이지만, 번역문도 꽤 괜찮은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 영어 읽기가 가능하다면 영어 대화를 권하게 되는 것은 여전히 깊이와 내용의 양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어로도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것을 강조해 본다. ^^
ChatGPT란 녀석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들의 사이를 참 잘도 채워준다.
거북이, 아킬레우스 그리고 이어지는
AI가 사이를 채워주는 것을 잘 한다는 것은 다른 관점으로 보면 연결을 잘 한다고 볼수도 있다. 사람들은 맥락이 다르거나 이미 머릿속에서 연결되지 않은 것들을 잇는 것이 쉽지 않은데, AI는 시키면 어떻게든 그것을 이어준다. 그 이어짐의 의미를 찾는 것은 여전히 사용자의 몫이지만, 이것은 전에 없던 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
Ai 관해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Douglas Hofstadter라는 인물이 언급되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왠지 중요한 인물 같아서 궁금해 졌고 ChatGPT에게 그에 대해 물었다. Godel, Escher, Bash: An Eternal Golden Braid라는 유명한 책의 저자였고 몇가지 다른 설명이 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게된 이름과 키워드로 구글과 유튜브를 검색하니 몇가지 영상이 나왔다. 당연히 유튜브 썸네일의 이미지 일부가 검색에서 찾았던 '괴델,에셔,바흐'라는 책의 표지 디자인 중 하나였다. 영상은 어떻게 이책을 썼는지에 대한 이야기 였는데, 당연하게도 기본 지식이 없는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에셔와 바흐는 그래도 알겠는데 괴델은 도대체 누구인가?
검색에서 돌아와 ChatGPT와의 괴델이 누구이고 왜 Douglas Hofstadter가 책에서 그를 중요하게 다루었는지에 대해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한 수학자로 철학과 수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나는 수포자에 물포자이기 때문에 내용이 모두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몇가지 이유로 요즘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에 빠져있다. 괴델의 이론을 이해하는 것 보다 나의 끌림이 더 궁금한 부분이기는 하다. 혹시 오펜하이머 영화를 봤다면 아이슈타인과 함께 숲 장면에서 잠시 등장해 나무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이 바로 괴델이다.
다시 돌아와 보자.
영상은 책을 쓰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 그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one day when I was thinking about a particular issue I started writing a dialogue that was modeled on a dialogue that Lewis Carroll had written called what the tortoise said to Achilles and I used the same characters.
어? 갑자기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이라고? 거북이와 아킬레우스? 제논의 역설?
루이스 캐롤이 제논의 역설의 그 거북이와 아킬레우스에 대해 글을 썼다고?
여기서 갑자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롤이 등장한다.
복잡한 수학과 물리를 이야기 중인데 동화 작가가 왜?
ChatGPT에 문장 그대로를 프롬프트를 넣었다.
> a dialogue that Lewis Carroll had written called what the tortoise said to Achilles
ChatGPT는 루이스 캐롤이 1895년에 'MIND'라는 철학 저널 기고한 "What the Tortoise Said to Achilles"라는 글에 대해서 알려주었고 대화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확인을 위해 위키 검색을 해보았다.
사실 이었다. 실제 대사와 내용들이 함께 위키에 설명이 되어있었다. 위키에 표시된 대사들이 아마 실제 글의 내용일 것인데 개념적으로는 같았지만, 대사는 ChatGPT가 보여준 것과 달랐다. 이 부분에 대해서 ChatGPT에게 확인을 요청했고 ChatGPT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뭔가 은근 슬쩍 빠져나가려는 전형적인 ChatGPT 대사들이다.
그런데, 도대체 루이스 캐롤이 왜 이런 논리와 수학에 관한 글을 썼는지 궁금했다.
ChatGPT와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ChatGPT의 대답을 통해 먼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그 작가가 맞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루이스 캐롤이 옥스포드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쳤다니? 수학자란 말인가? 와~ 유명한 동화 작가가 수학자였다고? 새로운 발견이 참으로 재미있었다.
루이스캐롤이 수학자라는 것을 알고 나니 왠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수학적인 부분이 있는지 궁금했다. ChatGPT는 이에 관한 몇가지 힌트를 주었고, 이것은 흥미로운 또 다른 긴 탐색의 시작이 되었다.
일단 여기서 루이스 캐롤이 수학자라는 부분을 정확히 확인 할 필요가 있었다. 뭐 ChatGPT가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잘 이어가면서 착각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팩트 체크는 중요하다.
이라고 검색을 하니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수학자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위키 내용은 확인을 했다 ^^ 수학자 였던 루이스 캐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수학적인 내용들이 실제 많이 등장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게 된 것들을 따라 다시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고 확인하고 발견을 기록해 둔다.
호프스태터는 "Godel's theorem in the human brain" 이라는 복잡한 글의 초고에 루이스 캐롤이 시작한 거북이와 아킬레우스로 재미있는 대사를 쓸 수 있었고 자신의 책에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까다로운 대사를 쓰다가 재미를 위해 악곡 형식인 "푸가"로 시작하는 문장을 썼는데 이 때 푸가에서 바흐의 캐논으로 생각이 이어졌다고 한다. 재미을 위한 우연한 시도로 바흐가 등장한 것이다.
호프스태터에서 시작해 괴델을 지나 루이스 캐롤까지 까지 이어지며, 제논의 역설이 내 마음을 다시 혹 하게 한것은 논리, 역설, 무한 등에 대한 막연한 나의 관심도 있겠지만, 정말 몰입해서 읽었던 보르헤스의 'The Perpetual Race of Achilles and The Tortoise'라는 단편 에세이의 강렬한 기억이 제논의 역설이 강한 훅으로 작동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즈음에서 호프스태터와 루이스캐롤 그리고 보르헤스까지 세명의 작가를 제논의 역설의 거북이과 아킬레우스를 중심의 정리를 하기로 했다. 먼저, 출발점이 되었지만 ChatGPT와의 대화는 루이스 캐롤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서 이 모든 연결의 출발점이 된 호프스태터 부터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보르헤스에 따로 이야기 나눌 부분은 없었지만, ChatGPT의 생각 맥락에 추가 해두기 위해서 짧은 질문을 더했다. 호프스태터와 루이스캐롤이 아킬레스와 거북이라는 주인공의 대화를 자신들이 깊게 접근하려는 것의 설명을 위한 장치로 사용했다면, 보르헤스는 실제 제논의 역설 자체에 대한 에세이로 접근의 위치가 다르다 할 수 있다.
세명의 작가들에 대한 같은 질문들을 던지는 대화를 이어갔다. 각 작품을 비교 정리하는 내용을 보기 편한 형태로 요청하기도 하면서,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그리고 무한에 관한 세 작가의 다른 접근과 생각들과 조우했다.
ChatGPT에게 흥미로웠던 긴 대화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에게 무한은 ○○이다."
Lewis Carroll에게 무한은 불완전성이다.
Douglas Hofstadter에게 무한은 재귀이다.
Jorge Luis Borges에게 무한은 불가능성이다.
순간 루이스 캐롤과 호프스태터와 보르헤스.
그들의 생각이 주마등처럼 흐르다 각각의 단어에서 멈추어 선다.
보르헤스의 책은 불가능성이라는 상징으로 가능성을 풀어낸다. 양자적이라고 할까.
(문화의 양자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자세히 해보도록 하자)
길지 않은 시간에 몇권의 책을 읽고 긴 대화를 나눈것 같았다.
예전이라면 몇일이 걸릴 수도 있었거나 일어 나지 않았을 연결과 확산이 일어났다. 더구나 그것은 글 읽던 선비의 수다처럼 가볍고 즐거운 과정이었다. 상황이 유유자적하다면 하루가 아니라 몇일이라도 이렇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시간이었다.
Generative AI라는 명칭처럼 우리는 AI의 생산성에 주목하고 AI의 생산성을 두려워 하기도 한다.
AI가 펼치기 시작한 미래가 어디로 인류를 이끌어 갈지는 아직 미지에 대한 상상이다.
하지만, 지금 대화가 가능한 AI는 이어지지 않던 것을 이어주고 사이와 사이를 채우면서
우리의 사유와 창작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AI와 말을 트고, 유유자적 새로운 Space of Possibilities 속으로 들어가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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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it matter!
놀공은 의미가 되는 경험을 만든다.
의미있는 경험은 Play로 구체화 되는 리추얼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것과 낯선 익숙함의 만남. 연결이다.
놀공은 게임 디자인에 기반한 놀공만의 경험 디자인을 펼친다.
거대언어모델 AI는 놀공의 디자인에 무엇을 이어줄 수 있을까 기대된다.
Let's 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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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SDD "서비스디자인드링크 서울"이라는 디자어너들의 모임이 있다.
에너지 뿜뿜한 디자이너 분들이 운영하고 그런 디자이너들이 모이는 모임.
이 글은 SDD Seoul에서 짧게 AI관련 이야기를 하나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