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무라카미 하루키
서론
# 최근에는 해외여행이란 것이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 여행을 떠나는 데 있어, 설사 아무리 멀고 아무리 외진 산간벽지라고 해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먼저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계획이나 지나친 의욕 같은 것은 삼가고, 말하자면 어느 정도 '비일상적인 일상'으로 여행을 생각하는 점에서부터 이 시대의 여행기는 시작해야만 한다.
# 나는 여행하는 동안에는 (..)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짤막하게 적어놓을 뿐이다. 가령 '보자기 아줌마!'라고 적어놓고 나중에 보면 '아 그렇지, 터키와 이란의 국경 근처의 그 작은 마을에 그런 이색적인 아줌마가 있었지'하고 쉽게 생각해낼 수 있다. (..) (하지만) 세밀한 기술이나 묘사는 될 수 있는 대로 기록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글쓰기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 그 대신 눈으로 여러 가지를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새겨 넣는 일에 의식을 집중한다. (..)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내 경험으로 보건대, 그렇게 하는 쪽이 나중에 글을 쓸 때도 훨씬 도움이 된다. 현장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작가는 여행지에서 돌아오고나서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대개 귀국해서 한 달이나 두 달쯤 지나고 나서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적으로 그 정도 간격을 두는 것이 결과가 좋은 것 같다. 그동안 가라앉아야 할 것은 가라앉고, 떠올라야 할 것은 떠오른다. (..) 잊어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 대개의 사람들은 (누구나) 여행을 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자신이 정말 그곳에서 느낀 것을, 그 감정의 차이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상대방에게 전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에게, '아아, 여행이라는 건 참으로 즐거운 것이구나,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그보다 더욱 어렵다. (..) 거기에는 기술도 필요하고, 고유의 문체도 필요하며, 열의나 애정이나 감동도 물론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기를 쓰는 것은 소설가인 나에게도 아주 좋은 공부가 되었다. 처음엔 그저 좋아서 썼지만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다.
# 누구나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어서 이젠 변경이라는 것이 없어져버렸고, (..) 탐험이나 비경과 같은 말은 현실적인 수준에서는 거의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어쨌든 여행을 하는 행위의 본질이 여행자의 의식을 바뀌게끔 하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하는 작업 역시 그런 것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와 신기함을 나열하듯 죽 늘어놓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좀처럼 읽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느 정도 일상에 인접해 있는가'(가 중요하며) 정말 신선한 감동은 그런 지점에서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변경이 소멸한 시대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 속에는 아직까지도 변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추구하고 확인하는 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그런 궁극적인 추구가 없다면, 설사 땅끝까지 간다고 해도 변경은 아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