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구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中 필사
에피쿠로스가 펼쳤던 주장은,
만약 우리에게 돈은 있지만 친구와 자유, 사색하는 삶이 없다면
결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고,
비록 부는 얻지 못한다 해도 친구와 자유, 사색을 누린다면
결코 불행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굳이 가지고 있지 않다 해도
그다지 서운해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것들엔 어떤 것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에피쿠로스는 행복에 필요한 것들을 3개의 범주로 나누었다.
"욕망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자연스럽고 또 필요하다.
또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긴 하지만 불필요하다.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이 있다."
돈과 행복의 관계를 에피쿠로스적인 시각에서 그래프로 그려보면, 돈이 행복을 안겨주는 능력은
급여가 낮을 때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실제로 고통에 처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행복하다.
만약에 영양분이나 옷이 부족하다면
실제적인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을 살 만큼의 충분한 돈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고통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강렬한 것이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을 형편이 되지 않아
평범한 카디건을 걸쳐야 할 때나
바다 가리비 대신에 샌드위치를 먹어야 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데는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이 아닐까.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않은 쾌락을 제공한다."
최고급 차를 가졌다 하더라도 친구가 없다면,
훌륭한 빌라를 소유했으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한다면,
리넨 시트를 가졌으되 고민이 너무 많아 잠을 이룰 수 없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비물질적인 요소들을 갖추지 못하는 한,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또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위해서
우리는 값비싼 물건을 갈망하게 되는 순간에
그것을 사는 게 옳은지를 자신에게 엄숙히 물어봐야 한다.
1. 행복을 위한 설계를 한 가지 세워라.
-휴일에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빌라에 살아야 한다.
2. 그 설계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상상해보자.
욕망의 대상과 행복을 연결하는 것에 예외적인 경우들을 찾아보라.
욕망의 대상을 소유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 빌라를 구입하는 데 돈을 쓰고도 여전히 불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빌라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지 않고도 휴일에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3. 한 가지 예외라도 발견된다면
그 욕망의 대상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 예컨대 친구가 없어 외로움을 느낀다면 빌라에서도 비참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하거나,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나는 텐트에 묵는다 해도 행복할 수 있다.
4. 행복을 엮어내는 데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최초의 설계는 지금까지 나타난 예외까지 고려하여
수정되어야 한다.
- 호화빌라에서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
단, 그 행복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하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누군가의 평가를 느끼는 한에 있어서
나는 빌라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
5. 이제 진짜 필요한 것은
혼돈에 빠졌던 애초의 욕망과는 매우 다른 것 같다.
- 행복은 멋지게 장식한 빌라보다는
마음이 맞는 파트너가 있느냐에 더 많이 좌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