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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Sep 17. 2016

공간의 향기

trinity chaple @ university of toronto

* 딸아이가 대학 신입생이 되던 시절 써놓았던 글.


올 가을 부터 딸 아이가 다닐 학교인 토론토 대학이다. 예전 부터 드넓으면서도 매우 짜임새 있는 토론토 대학의 교정을 거니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제 아이의 모교가 되다 보니, 쉬는 날이면 자꾸 발걸음이 캠퍼스로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토론토 대학의 세인트 죠지(Saint George) 캠퍼스는 토론토 다운타운의 정 중심에 위치해 있으면서 동서남북의 몇 블록을 차지하는 거대한 공간으로 이곳을 방문할때마다 새로운 건물과 새로운 공간,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영감을 받는다.

오늘은 토론토 대학의 자연과학 대학 중 가장 소규모인 Trinity College 다. 1851년에 설립되어 신학교를 비롯한 면역학, Ethics 등 1,700여명의 학부생을 가지는 트리니티 컬리지 (Trinity College)의 채플인 이 곳 공간은 마치 영국 윈저 성의 어느 부분 같았다. 백년이 넘고 이제 이백년이 가까워 오는 매우 오래된 건물인데도 세월의 흔적 말고는 어느 한군데 파손되거나 벌어진 곳 조차 없다

아이가 이 공간을 얼마나 사랑할지..  아이가 주로 생활하게 될 공대 건물들과는 20 여분을 걸어 와야 되는 거리이지만 딸 아이는 이 공간을 너무나 아끼게 될 지 모른다. 호젓하게 저 혼자 산책을 즐기거나, 이 아늑하고 평화로운 공간에서 랩탑을 펴 놓고 신나게 프로젝트를 수행할 지도 모른다. 설레는 가슴으로 남자 친구와 손을 맞잡고 와서는 사랑의 달콤함에 사뿐거릴 지도 모르고, 혹독하기로 소문난 학업에 지쳐,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친 머리를 식히려 올라 올지도 모른다. 혹 겪게 될지 모를 좌절과 깊은 고뇌의 수렁 속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아이는 이 정방형의 공간을 계속해서 걸으며 자신을 다독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너무나 많은 학업량을 소화하느라 강의실과 도서관 그리고 기숙사만을 오갈지도 모른다. 학업에 대한 중압감은 아이가 꽃다운 나이로서 대학 생활과 함께 누려야 할 최소한의 한가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과 감사, 그리고 평화로움 과 고요함을 통한 자기 성찰과 정화등을 사치스러운 것 쯤으로 여기게 할지도 모른다. 아이는 아마도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들을 기르며 사회에 기여를 하고, 그러한 오랜 시간이 지나간 후 모교에 대한 그리움으로 찾아온 날에서야 비로소 이 공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기쁨을 느낄수도 있다. 아빠로서 내가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 일은 올 가을 첫 학기에 아이와 캠퍼스를 거닐다가 자연스레 이 공간으로 들어와 보는 것 뿐이다. 그리고 나선 일년에 한두번 씩 슬쩍 물어 보는 것이다. 아빠랑 갔었던 트리니티 채플 가끔 가니..?

 

딸 바보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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