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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Dec 23. 2016

몽테리마르에서의 하룻밤

@monterimar.nicaragua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몰아쳐 깊은 지하에서 자고 있던 死者들을 깨우고 나서 벌이는 한판의 섬뜩하고 기괴하지만 신나는 놀이판 판타지였는데, 내게는 적도의 하룻밤이 함께했었다. 누구에게나 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물리적 너비나 심정적 깊이의 차이를 떠나 어떤 '하룻밤' 이 가진 의미가 그 前과 後가 매우 다르게 다가온 경우가 있을 것이다. 아직 없었다면 앞으로 생길 것이다. 하지만 무소르그스키의 상상력에 근거한 뭔가 드라마틱하고 위험이 가득했던, 혹은 가슴 졸임과 당황스러움, 혹은 새로운 것에 대한 경탄, 아님 무지막지한 스케일, 아무도 해보지 않았거나 아무도 가볼 수 없었던 곳 등등의 의외적 기대치에 따르는 엄청난 하룻밤이었다기보다는 그와는 전혀 반대로 호젓함, 평화스러움, 크고 넓은 호흡, 여유스러움, 부드럽기 그지없는 색조, 바람, 고요함과 어두움의 조화 등등의 어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 생태학적 요소들과 나의 감성적 필요가 공명되면서 거의 아무도 없었던 그 광대한 태평양 해변가의 레조트에서의 하룻밤이 내겐 아주 새로운 전과 후가 되는 모멘트로서 남아있다.

3개월 여가 넘는 기간 동안 난 이곳 니카라구아와 온두라스에 위치한 여러 공장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바이어들의 품질 요구 수준을 맞추기 위한 공장의 제반 조직, 행정, 공장 오퍼레이션, 생산 프로세스, 품질관리, 재고관리 등 공장 관련 전반에 대한 실사 및 갭 분석 그리고 To-be Process Model을 정립하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었다. 이미 수천 페이지의 프로젝트 결과물들이 나오고 연말이 다가옴에 따라 휴식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리고 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컨설턴트로서의 나의 커리어는 이곳 니카라과에서의 결과물들을 끝으로 마감하게 된다. 이후 잠시 상하이 부근의 공장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하긴 했지만..

주말마다 날 이리저리 관광을 시켜 주거나 동반 골프를 함께 하느라 고생이 많았던 주재원 직원들이 오늘은 니카라구아의 유명 해변 리조트에 가자 했고, 난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차량에 실려 큰 산맥을 넘고 거대한 사탕수수 밭을 지나 이곳 몽테리마리 리조트에 도착했었다. 잠시 한나절을 지내고 저녁에 돌아가기로 했는데 한번 둘러보고 난 내 마음은 전혀 돌아갈 생각이 나지 않았다.
.. 아니, 그럼 차량이 없는데 어떻게 돌아오시려구요?
.. 뭐, 어떻게든 수배가 되지 않겠어? 걱정 말고 올라가요.
그렇게 해서 날 데리고 왔던 직원들이 다 떠나가게 되고 난 누구보다 자신 있는 소위 '혼자 놀기'의 진수에 빠져 들게 된다.

열대 해변 야자수 아래의 해먹은 휴식의 완성이라는 전형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가.. 맨발로 해먹에 올라 살랑거리는 미풍과 함께 흔들리며 야자수 잎새 사이로 언뜻언뜻 내리쬐는 햇살을 즐기는 것, 더 이상의 휴식은 필요치 않은 듯했다.

이곳은 스페인의 유명 리조트 그룹인 barcelo 가 건설하고 운영하는 곳으로 모든 것이 유럽 기준에 맞춰 지어지고 운영되었으며 니카라구아의 부유층이나 북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샷건을 든 경비들이 레조트를 경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랑자는 물론이고 인근 촌락의 사람들 조차 얼씬 할 수 없는 곳이었다. 12월 중순이면 hot season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신엔 거의 사람들이 없었고 난 그 넓고 다양한 리조트의 모든 시설들을 거의 사유지처럼 즐길 수 있었다.

펠리컨들이 태평양의 수평선을 따라 저공비행을 하는 뒤로 거대한 황금빛 노을이 펼쳐졌고

야자수들의 실루엣은 짙어져만 갔다.

연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더없이 포근하고 상쾌한 열대의 밤을 태평양 해변에서 맞이할 수 있었음은 정말 행운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의 중원 프래리(the Prairie) 지방의 기온은 평균 영하 30 도를 밑돈다.  북극으로부터의 극한 공기주머니 Polar Vortex 가 기승을 불릴 때면 영하 사십 도는 쉽게 내려가게 되는데 그럴 즈음 난 내 호텔에서 이곳 몽테리마르 해변의 부드럽고 싱그러웠던 밤바람을 떠올리며 그곳에 대한 그리움에 젖게 된다.

거의 아무도 없었던 이곳에서 human interface는 우연히 스친 아르헨티나에서 온 oil industry professional과 잠깐의 친분을 쌓으며 달빛 아래서의 식사를 나눈 게 전부였다.


c u soon gu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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