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ter Shin Toronto Dec 26. 2016

waiting for Godot.. still?

@the Prairies.canada

우리가 그토록 바래며 기다려왔던 고도는 무엇이었을까. 영원한 젊음? 행복? 이상적 민주주의? 빅뱅의 완벽한 이해? 위대한 선각자 ? 모두가 잘살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자본주의? 최고의 연인? 최고의 생산성? 죽지 않을수 있음? 저 눈 앞의 모퉁이를 돌아 바로 나타날것 같았지만 언제나 기다림의 대상이었던 우리의 고도는 하지만 이미 내 곁에 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당한 스트레스와 노동이 주는 깊고 달콤한 잠, 크게 다를것 없지만 열심히 살아야만 그 하루가 제데로 내일로 이어지는 일상, 오랜 동안 그립기만 하다가 불쑥 나타난 친구 앞에서 기뻐 어쩔줄 모르는 심상, 한소절의 노래를 우연히 흘러 들으며 떠오르는 그 옛날의 달콤함, 멀리 있는 자식들이 찾아 온다는 소식에 며칠씩 잠못 이루는 설레임.. 이런 쁘띠 브르주아적 일상, 거대한 이상과 꿈을 이루어가는 장도는 전혀 아니지만 적당한 노동을 동반하는 건강하고 소박한 하루 하루의 일상, 우리의 고도는 이렇게 우리가 되고 내가 되어 이미 나와 함께 하고 있는지 모른다. 갈수록 흉흉해져 가기만 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이러한 일상적 고도, 소박한 고도를 지켜낼 수 있음에 감사하기만 하다. 아니 우린 그렇게 고도를 무력화 시켜버렸는지도 모른다. sadly..

듬직하다고 해서 기다림이 수월하지는 않을 겁니다. 흩트러짐 없이 자신을 꽁꽁 동여 매여 단속한다 해서 돌아옴이 담보될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요.

기다림의 나이테가 한두해, 한 계절, 두 계절 쌓여가면이제는 기린의 목 길이 조차 훨씬 넘어 버렸습니다. 고도는 분명 온다고 약속을 했다지요.

고도를 기다리며 호흡의 대부분이 되어버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바라본 초 겨울 들판에는 한 여름의 맹렬한 삶을 구가했던 억센 풀들이 희극적 모습의 동그란 건초 더미로 화해 옹기 종기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마치 봄볕이라도 쬐는 듯 밝게 박제된 소박한 풀들이 열지어 있습니다. 고도는 오는 것이겠지요. 고도는 오고야 말겠지요. 저기..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 오고 있는 듯도 합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짜라투스트라 賢人이 예의 그 큰 제스쳐로 홀로 서 외치고 있다.고도는 죽었다! 그리고 이 쪽 한켠에서는 새로운 개봉 박두의 영화 소식이 들린다. Apocalypse Wow..

아무것도 아님(nothingness)을 기다리며 계속되는 인간 배우들의 사설속에 공연 내내 그저 우뚝 서있기만 하는 나무. 구부러지고 다 말라빠진 그 나무의 존재감이 난 좋았다. 한국에 있던 시절, 몇년 간격으로 봐 오던 사무엘 바게뜨의 이 똑같은 연극에서 인간 출연진은 계속해서 바뀌어 가고 늙어 갔으나 나무의 오롯한 존재감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어제 늦은 오후, 아시니보이네 강(Assiniboine River) 가에 말라 널부러져 있던 나무를 가져다 밑둥을 손보고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고, 철판 스탠드를 만들어 세워 내 호텔 레스토랑 한켠에 가져다 놓았다. 나무랑 쇳덩이 스탠드가 삼십 킬로가 넘었는데 그 무게감이 주는 안정감에 뿌듯했다. 내 손가락 보다 굵고 긴 볼트도 세개나 박아 넣어 고정 시켰기도 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님을 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일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부조리함은 도무지 그 깊이를 모르겠다는..

stay sober.


매거진의 이전글 세월을 따라 자라나는 나무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