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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Jan 04. 2017

on the road  - 폭풍의 언덕

@trans-canada hw no.1.chaplin

언젠가 찍은 사진과 메모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면 전혀 새로운 감상에 잠기곤 하는데, 예상치 않았던 그 시공간 만의 독특한 신비함을 누릴 수 있었음에 새삼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대륙의 사나운 바람이 온 사방으로 불어대고 있던 그때 서너 줄기의 햇살을 받으며 지평선 언덕에 서 있었던 말들이 있었다. 거칠고 광활한 대지 1000여 킬로미터를 하루 종일 가로 지르다 잠시 정차해 기지개를 켜다 우연히 바라봤던 그 아름다웠던 말들은 먹구름과 바람, 그리고 대지의 가득한 향기의 일부였다.

Manitoba 주에 인접한 Saskatchewan 주의 아름다운 타운 Kamsack 에서 아침 겸 점심을 마친 후 출발하여 Yorkton을 지나고, 사스카츄완에서 가장 큰 도시 Regina를 지나며 유서 깊은 캐나다 횡단 도로 1 번을 한참 드라이브 하면서 해가 지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지나면서 어느덧 붉은 노을이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운전한다는 것, 하루 종일 이 거대한 대륙의 정 가운데를 동에서 서로 횡단한다는 것은 참 느긋하다. 화창한 푸른 하늘과 검은 구름 아래의 소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드라이브는 계속 되었다.

잠시 노을을 감상하기 위해 정차한 이곳엔 전혀 다른 풍광과 감흥이 펼쳐지고 있었다. 차량의 문을 열기가 힘들 정도의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고, 끝모를 철로가 지나고 있었고 그 위엔 아름다운 초원이 펼져져 있었다. 그리고 그 거센 바람을 맞으며, 서너마리의 말들이 폭풍의 언덕에 서서 아름답게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수년전 다녀온 한국 여행에서 동생의 승용차속의 친절한 내비게이터는 쉴새없는 나레이션이 나왔었다. 모든 종류의 신호 표식과 장애물들을 지날때 마다 나오는 안내 멘트는 재미를 넘어 짜증이 날 정도 였는데, 반면 캐나다 버전의 네비게이터는 너무 심심하다. 'turn left in 400 kilo-meters' 그 한마디 뱉어 내고는 네다섯 시간 동안 아무말도 없는 것이다. ㅎ

캐나다에서 산다는 것은 자신이 가져가는 시간과 공간의 대폭적 확장을 의미한다. 십여시간 정도가 걸리는 천킬로 정도의 드라이빙은 그저 통상적이고 가끔 이천, 삼천 킬로 미터 이상의 거리를 운전해 오고 가기도 한다. 이러할때 드라이빙의 조급함은 무의미하다. 서두른다고 달라질 건 없다. 신호등과 신호등 사이의 조급함에서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 사이의 차원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Talk to you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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