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론디가 보고싶어..

by Peter Shin Toronto

인간을 대상으로만 그리움이 생겨나는건 아닌것 같다. 어렸을적엔 참 많은 개들과 함께 했었다. 포인터, 셰터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사냥개들, 도사견 세퍼드등의 대형견들, 그리고 스피츠, 진돗개, 삽살개등의 워치독 및 애완견들, 내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개들의 종류 만큼이나 녀석들의 성격도 각양각색이었었다. 애교 만점인 녀석, 시큰둥한 녀석, 자기가 오히려 주인 행세 하려던 녀석, 좀 비굴했던 녀석 등등. 하지만 난 지금 그 많은 녀석들과의 기억 중에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함께한 딱 한 녀석과의 추억만 깊다. 녀석 말고는 주로 좋는 기억들 뿐이다. 눈보라 거세던 산과 계곡에서 너무 많은 운동량으로 기절해버린 사냥개를 차로 들여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녀석의 몸 구석 구석을 맛사지해 주던 기억, 너무나 멋지게 생겨 녀석의 눈동자를 한참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던 기억, 뭘 해줘도 맘에 내켜하지 않던 녀석을 위해 이것 저것 다른 먹이를 줘가며 심을 사려했던 기억, 내가 함께한 반려견들에 대한 기억은 참 많다.

몇년전 방학에 내려온 딸아이와 친구 Wayne 의 농장에 갔었는데 거대한 세인트버나드가 태어난지 얼마 안돼는 주먹만한 kitten 을 마치 엄마처럼 돌보고 있었다.

쵸코릿색 레브라도인 이 녀석은 천방지축 온 농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이젠 의젓한 워치독이 되었다. 이름은 shadow.

토론토에서도 이 강아지들 때문에 그 주인들과 오랜 동안 안부를 나누고 살곤 했다. 동네의 귀염둥이 였던 퍼그지 테사, Tessa. 성격좋은 주인 청년도 녀석과 똑같이 생겼었었다. ㅎ

온타리오 웨스트 레이크에서 보트를 타다 스친 네이게이터 견공.

보트를 몰던 노부부가 녀석의 이런 자태를 얼마나 흐믓해 하던지.

송아지 만한 그레이트 데인 이었던 브루스 웨인.. 맘씨 넉넉했던 주인 처녀는 존 웨인과 브루스 윌리스를 떠올리며 이 착하고 멋진 강아지의 이름을 Bruce Wayne 이라 지었다. 녀석은 아직 일년도 채 안된 강아지였었다.

브루스 웨인이 산책길에 나설때면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꼭 이렇게 이웃들에 둘러쌓여 수다를 나누곤 했었다.

내가 살던 동네를 매일 샅샅이 산책하던 녀석. Wolfrey watchdog 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이 작고 다부진 녀석만큼 아담한 체구의 주인은 녀석이 빨빨거리며 자신과 함께 온동내를 돌아다니는걸 너무나 자랑스러워 했다.

울프리 동네의 홈 커밍 block party 가 열렸을때 내가 포토제닉 강아지로 선정했던 녀석.

가족들과 함께 늙어가던 검은개와 흰개.

사람이든 반려견이든 그 특별함이 함께했던 경우, 기억이 살아남아 다시 보고싶고 다시 함께하고 싶다. 아쉬운 사실은 내가 잘해주고 이뻐했던 강아지들보다 내가 못되게 굴었던 녀석에 대한 기억이 더욱 또렸해진다는 거다.

아침 산책을 너무 좋아했던 너였다. 지프 문밖으로 아름다운 귀를 펄럭이며 바람을 즐기곤 했던 너였지. 달리는 차안에서 혹시 바깥으로 뛰어 내리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지만 넌 언제나 그저 머리만 내밀뿐 조수석에 의젓하게 앉아있곤 했었지. 실내 골프 연습장에서 넌 인기 만점이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널 쓰다듬으며 네 미모에 찬사를 보내곤 했지만 넌 눈길도 주지 않았고 미동도 하지 않았었다. 그저 내가 운동하는 모습만 석고상처럼 바라보고만 있었지. 동네 사람들이 주인만 바라본다며 질려했을 정도로. 인간들 간의 지극한 가치중 하나인 의리와 충정을 가졌었고 장난스러움과 아름다움을 가졌던 너, 이제 와서야 네 생각이 불쑥 불쑥 솟아나면서 네가 너무 보고 싶다. 블론디란 이름은 네 아름다운 금발을 따라 내가 지은 이름 이었고 최근에서야 히틀러의 애견 쉐퍼드 이름 역시 블론디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네 이름에서 떠오르는 너의 그 어여쁘면서도 고고한 이미지는 묽어지질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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