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 말고 여우

@don valley golf.toronto

by Peter Shin Toronto

햇살이 그대로 투과되는 황금빛 맥주를 마시기 좋은 날이었다. 또한 여우를 만나기에 좋은 날이기도 했다.

그 다음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그 별에는 그저 잠시 들렀을 뿐이지만 어린 왕자를 깊은 우울에 빠뜨렸다. "무얼 하고 있어요?" 빈 병 한 무더기와 술이 가득 차 있는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술꾼을 보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술을 마시지." 침울한 표정으로 술꾼이 대꾸했다. "왜 술을 마셔요?" 어린 왕자가 그에게 물었다. "잊기 위해서지." 술꾼이 대답했다. "무엇을 잊기 위해서요?" 측은한 생각이 든 어린 왕자가 물었다. "부끄럽다는 걸 잊기 위해서지." 머리를 숙이며 술꾼이 대답했다. "뭐가 부끄럽다는 거지요?" 그를 돕고 싶은 어린 왕자가 캐물었다.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이렇게 말하고 술꾼은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난처해진 어린 왕자는 길을 떠나 버렸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하군' 하고 어린 왕자는 여행을 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hey, what's up? :-)

여우야, 내가 어린왕자였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나 갔다네. 이젠 그 이상한 어른일뿐.


돈 밸리 클럽의 마지막 파 4 홀, 볼은 홀컵 1m 정도로 제대로 붙였다. 맘 속으로, 버디 아님 주금을~! 이라고 외쳤으나 결국 파로 마감했다. 그린을 돌아 막 떠나려는 순간 그린 주변에 여우가 보였다. 녀석은 그린 위를 가로 지르며 천천히 걸어가다 날 쳐다 봤다. 여우의 친구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가벼운 산들바람 속에 섭씨 22도가 구가된 토론토의 오늘. 자그마치 다섯 시간의 길고도 긴 게임이 이 귀여운 여우와 함께 즐겁게 끝났다. 감사!

먼지와 담배연기를 산란(scattering)시키며 빌딩 사이를 뚫고 한줄기 가녀린 빛으로 생맥주 머그로 스미던 황금빛 햇살은 내가 수업을 땡땡이 쳐가며 친구들과 계엄시국을 한탄하던 학교앞 컴컴한 오비 베어스 생맥주 집 안에서였다. 삼십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난 그 맥주의 그 빛깔, 그 아름다운 젊음의 투명한 황금색을 다시 본다. 하지만 오비 생맥주도 아니고 침침하고 쾌쾌한 냄새의 생맥주집도 아니다. 더이상 화창할수 없는 여름의 한 가운데, 막 필드에 나서기 직전 목을 축이는 내가 좋아하는 신선하고 쌉쌀한 알랙산더 키스 생맥주 한잔 인거다. 일견 더 상쾌하고 더 개방적이고, 더우기 도시의 빌딩 사이로 비집고 드는 햇살이 아닌 단풍 나뭇잎 사이로 드는 것이고, 더욱 화창한 이곳이지만 그 옛날 젊음의 황금색 오비 맥주와 오백원 땅콩이 많이 그리운건 어쩔수 없다.

벌써 세포의 늙어감을 되돌릴수 있는 미케니즘이 규명되어 가면서 백살을 넘어 수백살을 넘어 무한히 죽지않을수 있음이 현실화되어 가지만 적어도 우리 세대에 적용될것 같지는 않다. 수퍼 리치 들에겐 가능성이 없는것도 아닐 것이다.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그 고귀한 추억들은 어떻게 될까. 설레고 아름다웠던 추억을 부여안고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영생을 구가하는 것 보다 더 낫지 않을까.

내가 살고 또 살기를 거듭하여 인생의 모든 제반 시행착오를 줄이고 줄여 드디어 무결점의 인간, 아니 괴물이 되어 버린다면! 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살해당하기 전에는 고령으로 인해 찾아오는 죽음이 없어 자살은 사회를 밝히는 위인의 행각이 되어버릴수도 있겠다.

이번 라운딩은 토론토 공대생 준호랑 함께했다. 준호의 모친이 내 대학 후배이고 토론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인연으로 서로 시간을 내어 라운딩에 나선 것이었다.

그늘이 반가운 만큼 오늘은 따가운 여름의 한낮이었다. 무거운 캐리온 백을 메고 18홀을 걸어야 하는 만큼 공이 잘 맞지 않으면 짜증이 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이런 날은 멘탈을 잘 관리해야 한다.

두둑한 배짱의 캐나다 기러기들은 내가 오거나 말거나 자기 할일에 바뻤다.


토론토에서 내가 살던 집 앞에 위치했던 돈 밸리 골프 클럽은 어느 계절과 함께해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