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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y 11. 2016

붉은 시월

the hunt for Red October

당분간 전 세계 무기 시장에서의 가장 고부가 가치 상품은 어떻게든 스텔스(stealth) 기능이 구현된 것일 것이고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당분간 국가 간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제맘대로 판매, 구매할 수 도 없을 것이다. 외부의 적, 내부의 적, 그리고 급기야 보이지 않는 적과도 싸워야 하는 현대의 전쟁은 싸워 이겨야 할 모든 종류의 적들과 맞닥뜨려야 한다. 미 국방부는 탐 클랜시 생전 그의 집필 작업을 위한 자료 수집을 위해서라면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그의 첫 소설에서 탐 클랜시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설립의 기폭제였던 10월의 볼셰비키 혁명의 이름을 소련 핵잠수함의 이름으로 명명한다.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지 말할 나위가 없지만,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등 독재국가에서의 선전용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마도 그보다 훨씬 더 critical 하고 치밀하게 광범위할 것이다. 체제를 떠받들고 모두가 하나 되어 나가자는 정치 선전이다 보니 장엄하고 비장하기 그지없다. 영화 '붉은 시월'에서의 장중한 합창곡들은 화면을 압도하는 거대 핵 잠수함의 위용과 더불어 관객을 사로잡는다.

소비에트 시절의 프로파간다 포스터들을 보거나 당시의 정치선전 음악들을 들어 보면, 음악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얼마나 인간 개개의 개성을 뭉개버리고 집체화, 총체화, 교조화 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체제에서 바라는 바람직한 인간은 굵은 팔뚝과 거대한 종아리를 가진 일 잘하는 노동자 일뿐이다. 사회에 대한 삐딱이 시선의 회색분자들이나 감상적이고도 연약한 예술가들, 인간의 깊은 내면을 놓고 고민하는 철학자들, 그리고 정신적 아편이라고 규정된 종교에 심취된 반동 등등은 그저 속히 색출되어 즉시 제거되어야 할 사악한 잉여 인간들로 구분될 뿐이었다. 피를 부르는 노래, 피를 끓게 만들어 집단의 가치 앞에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개인은 얼마든지 무시되어도 상관없을 것 같게 만드는 노래, 동지들의 시체가 얼마나 쌓여가든 끝없이 밟고 넘어 진군하게 만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단의 가치를  이룩하려 하게 하는 노래들이다. 무시 무시하다.

초 거대 잠행(stealth) 핵 잠수함 '붉은 시월'의 취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군사 서스펜스 스릴러 'The Hunt for Red October'. 누구도 흉내내기 힘들 것 같은 함장 숀 코너리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이제는 독립한 어엿한 국가지만 구 소련 체제에서는 소비에트 공화국 내의 한 작은 공화국에 불과했던 리투아니아 귀족 출신으로 소련 군부 내에서 가장 출세한 리투아니아 장군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인데 아마도 그의 중후한 연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거대 핵 잠수함이 기관고장으로 가라앉아 모든 승무원이 몰살된 사건은 실제로 종종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심해 인양 기술과 장비가 모자라는 소련은 미국이나 영국이 인양하는 장면을 이를 갈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공격 장비들의 우수성에 비해, 운용 요원들의 안전이나 구난 장비 등은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의 무기 체계 속성상, 기술이 없어서 라기보다는 전략적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에 밀려 심해 구조 장비나 기술을 굳이 보유하거나 쌓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돈이 있으면 탱크나 전투기를 한대 더 생산해 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타이급 잠수함은 북한이나 한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중소형 잠수함들과는 체급이 전혀 다른 것으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적재하고서도 당시 나토의 어떤 탐지 장치에도 발각되지 않는 정숙 잠행을 할 수 있는 최첨단 핵잠함이었다.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최대의 수송 항모 독도함보다 한배 반이나 배수량이 큰 잠수함이 상상이 되는지.. 배수량 3만 2천 톤에 길이가 거의 200 미터에 달하고 높이만 연어급의 길이 만한 23m에 달하는, NATO에 의해 타이푼이라는 경악할 코드네임이 부여된 이 원자력 잠수함은 원자로의 이상이 발생하지 않는 한 거의 무한대로 운항을 지속할 수 있는 괴물이었는데, 푸에르토 리코의 심해의 도랑에 처박힌 적이 있었고, 미 당국에 의해 건져 올려진 후 reverse-engineering 작업을 거치면서 하나하나 낱낱이 해부, 분석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탐 클랜시는 1980년에 취역한 이 타이푼 급 소련 잠수함을 모델로 해서 '붉은 시월'이라는 이름으로 가상의 잠수함을 설정하여 이야기를 전해 간다. 냉전시대 미소 간 가장 첨예한 대립각을 가졌으면서도 넓고도 깊은 지구 상 오대양 전체를 그 마당으로 삼아 펼쳐졌던 이 공격 잠수함 들간의 싸움과 더불어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경직된 국가 체제와, 상대에 비해 부족한 군비, 그리고 군 엘리뜨와 당 정치 요원 간의 갈등과 암투로 얼룩졌던 구 소련 체제의 단면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적국인 미국의 시각으로 그려지는 것이지만..

애초에 방어가 아닌 적극적 공격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병기인 잠수함은 타이푼 급이 탄생함으로써 전쟁의 양상을 달리 하게끔 만드는 형태로 돌아가게 되는데, 자그마치 26기의 탄도 미사일로 무장한 이 잠수함은 적의 심장부를 단번에 초토화시킴으로써 반격의 기회를 전혀 주지 않는다는 것으로 소설은 그러한 설정으로 박진감 넘치는 시나리오를 구성한다.

수백 미터 심해에 가라앉고 있는 잠수함 내에서의 수병들, 라미우스 함장의 의중을 추측해가는 CIA 요원의 머리싸움. 변절임을 단정하고 마리우스를 뒤쫓아 격침시키려는 알파급 잠수함을 지휘하는 전형적인 소비에트 엘리트 장교 함장 등, 이데올로기와 조직에서의 역할을 떠나,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정서와 행태를 보는 재미가 잠수함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는 더욱 큰 것 같다.

잠수함 내 인간들이 보여주는 극한적 상황을 잘 그려준 영화는 나치 독일의 자랑이자 연합군에게는 지옥의 사자였던 '유 보트'가 있었다. 잠수함의 본능인 공격성으로 온 바다를 종횡무진 누비며 적들을 침몰시키지만 2차 대전 당시 잠수함의 천적인 구축함에 발각이 되는 경우엔 엔진을 끊채 승무원 전체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자신들의 운명을 구축함에 걸어야 했던 것이다. 구축함, destoyer, 이란 말 자체가 잠수함을 쳐부수기 위해 고도의 기동성과 소나 장비 그리고 각종 폭뢰 등을 구비하고 잠수함 사냥에 나서는 특수 전투함을 말하는 것이었다.

핵 잠수함이 개발되어 수년간 연료 재주입 없이 또 수개월간 수면으로 부상하지 않고도 잠수를 계속 진행할 수 있는 현대의 초첨단 잠수함에 비해 과거의 잠수함들은 승무원들에게 열악하기 그지없었는데,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막장에 다다른 인간의 면모를 그려 볼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의 더없이 좋은 소재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have a good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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